관장과의 대화(제69도)
옥에 갇힌 최창주가 신자를 밀고하라는 관장의 강요에 '천주교에서는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는 것을 금하고 있어 한 사람도 고발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그림 탁희성 화백
최창주(마르첼리노, 1749~1801)는 경기도 여주 양반 집안에서 태어나 40대 초반에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였다. 그는 온 가족을 입교시키고 열심히 신앙 생활을 했으나 1791년 신해박해 때 체포됐을 때 배교하고 석방됐다.
이후 그는 죄를 깊게 뉘우치고 가족과 이웃 교우들을 힘써 권면했으며, 두 딸을 모두 교우에게 출가시켰다. 두 딸 중 한 명은 1801년 여주에서 순교한 원경도(요한)의 아내이고, 다른 한 명은 1839년 전주에서 순교한 신태보(베드로)의 며느리로 1840년 전주에서 순교한 최조이(바르바라)다.
여주 지방에서 1800년 부활대축일에 박해가 일어나 체포된 최창주는 여주 감옥에 갇혔다가 경기 감영으로 끌려갔고, 1801년 신유박해가 시작되자 사위 원경도와 이중배(마르티노)와 함께 여주로 압송돼 참수형으로 순교했다. 1801년 4월 25일(음력 3월 13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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