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배로운 피
최필공이 형장에서 칼을 맞았다. 첫 번째 칼이 목을 비켜가자 손에 흐르는 피를 보면서 "보배로운 피"하고 외치고 있다. 그림/탁희성 화백 최필공(토마스, 1744~1801)은 한양의 의원 집안 출신으로 1790년 사촌동생 최필제(베드로)와 함께 교리를 배워 입교했다. 입교하자마자 최필공은 교리 실천에 큰 열성을 보였고, 공공연하게 교리를 전파하고 다녔다.
1791년 신해박해 때 체포된 그는 목석과 같이 굳게 신앙을 고수했지만, 정조 임금까지 나서는 유혹에 결국 굴복하고 석방됐으며, 평안도 지방 심약(조정에 올리는 약재를 검사하는 직책)에 임명됐다.
그러나 마음에 여전히 천주 신앙이 자리잡고 있었던 최필공은 3년 후 심약 자리를 사양하고 한양으로 돌아와 열심히 교리를 실천했다. 1799년에도 체포됐으나 정조의 명령으로 풀려난 그는 신유박해가 정식 시작되기 전인 1800년 12월 17일(음력)에 다시 체포돼 마침내 서소문 밖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1801년 4월 8일(음력 2월 26일)로, 그의 나이 57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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