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벗는 것은 존경의 표시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
얼마 전 탈북자의 실상을 그린 영화가 개봉되어 많은 이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북한 함경도 한 탄광마을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열한 살 아들, 세 가족의 슬픈 이야기이다. 주인공 남자 어린이가 기차역 대합실에서 잠을 자면서 도둑 맞지 않기 위해 신발을 안고 자는 장면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신발을 신는 것은 발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다른 사람의 신발을 소유하는 것은 그 사람을 통제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이처럼 발과 마찬가지로 신발도 소유와 권력의 상징으로 사용됐던 것이다. 그래서 신발 밑에 깔리는 것은 타인의 지배를 받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에서 신발은 가치 없는 물건을 상징했다. 세례자 요한은 자신을 소개할 때 예수님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내 뒤에 오신다. 나는 몸을 굽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마르 1,7).
주인의 신을 드는 것은 하인이 하는 가장 천한 일중의 하나였다. 주인이 집 안에 들어갈 때 신을 잘 보관했다가 주인이 신을 신을 때 재빨리 준비해야 했다. 구약 시대에 노예들이 신발 한 켤레 값에 매매됐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의 세 가지 죄 때문에, 네 가지 죄 때문에 나는 철회하지 않으리라. 그들이 빚돈을 빌미로 무죄한 이를 팔아넘기고 신 한 켤레를 빌미로 빈곤한 이를 팔아넘겼기 때문이다'"(아모 2,6).
신발을 신는 것은 특별한 임무나 여행을 위한 준비를 의미하기도 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할 때 신발을 신으라고 지시하셨다. 신발은 신되 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라고 이르셨다(마르 6,9). 여기서 신발을 신는 것은 그 사람이 노예가 아니라 자유인임을 의미하는 하나의 상징이 됐다. 신발을 신는 것은 자유민의 특권이었고 포로와 노예는 맨발로 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신발을 벗는 행위가 법적 의미를 갖는 경우도 있었다. "옛날 이스라엘에는 구원하거나 교환할 때, 무슨 일이든 확정 짓기 위하여 자기 신을 벗어서 상대편에게 주는 관습이 있었는데, 이것이 이스라엘에서는 증거로 통하였다"( 룻기 4,7).
또한 루카복음에서 방탕한 아들이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그를 위해 가장 좋은 옷을 입히고 발에 신을 신겼다. "아버지는 종들에게 일렀다.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발을 신겨 주어라'"(루카 15,22). 이것은 아들이 집을 나가기 전에 지니고 있던 권리를 회복한 것을 의미한다.
신발은 점유와 정복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래서 신발을 벗는 것은 그 장소에 대한 존경의 표시였다. 하느님은 타오르는 떨기 나무속에서 나타나 모세에게 신을 벗으라고 요구하셨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리 가까이 오지 마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탈출 3,5).
성역에 들어갈 때 속세와의 접촉을 끊고 복종과 존경의 마음으로 들어가고 악에서 벗어남을 의미한다. 죄인인 인간은 신발을 벗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느님 앞에 예의를 갖추고 서야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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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나이 가타리나 수도원에 있는 6세기 모자이크 작품 '신발을 벗는 모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