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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치 넘어 '미러클 코리아'로

namsarang 2010. 1. 2. 11:56

[국치 넘어 '미러클 코리아'로]

 경술국치 100년 만에 대한민국 'IT·조선 파워' 일(日) 추월

경제로 돌아본 1910~2010

지금부터 100년 전, 한·일 양국 간 격차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만큼이나 엄청났다. 대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내홍에 휩싸여 있다가 일본에 굴욕적으로 무릎을 꿇고 말았다.

말과 소가 이끄는 달구지와 바람에 의존하는 목선(木船)으로는 군용트럭과 철제 군함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 해방이 됐지만 6·25 전쟁으로 폐허가 돼 국가 재건은 그야말로 '쓰레기 더미에서 장미꽃이 피는 것을 바라는 것'만큼이나 회의적이었다. 패전국 일본은 6·25 전쟁 특수를 누리며 다시 성장가도를 달렸다.

하지만 절망하지 않았다. 온 국민의 저력은 '한강의 기적'을 일궈 냈고, 지금도 그 기적은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자동차와 반도체, 정보통신산업은 올해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일본을 뛰어넘는 실적을 기록하며 일본을 충격에 빠뜨렸다. 불가능해 보였던 일본 추월이 현실화되고 있다.

지난 100년은 어찌 보면 일본 추격사나 다름없었다. 나라를 빼앗았던 일본을 따라잡기 위해 일본을 끊임없이 모방하면서도, 일본을 넘어서기 위해 온 국민이 죽기 살기로 뛰었다.

앞으로 100년은 일본만이 우리 경쟁상대가 아니다. 중국을 비롯한 수많은 신흥국가들이 우리나라를 넘보고 있다. 과거보다 더 냉혹하고 힘든 시련을 극복해야 할지도 모른다. 1910년 한일 병합 이후 100년간 우리나라와 일본의 성장 궤적을 되돌아보면서 대한민국의 경쟁력을 재평가해본다.


 

 

1984년 일(日)서 반도체 기술 수입… 9년 만에 '메모리 역전극'

  • 유병규 현대경제 연(硏) 경제연구본부장

특별기고 경제로 돌아본 1910~2010
한(韓), 정주영·이병철 등 도전적 기업가들과 정부·국민 하나돼 성장…
40년 후엔 일(日) 앞설 것

    유병규 현대경제 연(硏)
        경제연구본부장
지난 100년간 우리 경제의 놀라운 성장 과정은 '기어간 근대화, 달려온 산업화, 날아가는 정보화'로 축약할 수 있다. 근대화에 뒤져 일본 식민지로 전락했지만 산업화 과정에서 열심히 일본을 쫓아갔고, 정보화시대에는 일본을 앞서 나갈 수 있었다.

지난 100년간 우리 경제의 놀라운 성장 과정은 '기어간 근대화, 달려온 산업화, 날아가는 정보화'로 축약할 수 있다. 근대화에 뒤져 일본 식민지로 전락했지만 산업화 과정에서 열심히 일본을 쫓아갔고, 정보화시대에는 일본을 앞서 나갈 수 있었다. 영국·미국·일본과 같은 주요 선진국이 수백년에 걸쳐 달성한 경제적 성과를 한국은 1960년대 이후 50년 만에 축지법을 쓰듯 압축적으로 이뤄냈다. 노벨경제학 수상자인 루카스는 한국 경제의 발전상을 '기적의 창출(Making a Miracle)'이라고 극찬했다.

우리 경제가 100년 전 세계열강 중 하나였던 일본과 오늘날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급성장한 원동력은 뭘까.

우리 경제는 의욕 넘치는 기업가 정신이 살아 움직여 왔다. 한국 경제를 키우고 산업의 브랜드 가치를 높여온 견인차는 바로 크고 작은 기업들이었다. 조선과 자동차 산업 등은 현대 정주영, 반도체와 전자 산업은 삼성 이병철과 같은 도전적이고 창의적이며 열정이 넘치는 기업가들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악조건과 역경을 뛰어넘는 용기와 인내심을 지닌 근로자들도 기업 성장의 원동력이었다. 특히 한국은 경제개발 초기는 물론 지금도 고등교육 비중이 상당히 높은 나라다. 산업화 시대의 '우골탑'과 세계화 시대 '기러기 가족'으로 상징되는 한국의 유별난 교육열은 한국 경제가 성장하는 중심축 가운데 하나임을 부인할 수 없다.

정부 대응도 현명했다. 경제개발 초기에 최고의 엘리트로 구성된 정부는 특정 이익에 얽매이지 않고 경제개발계획을 기획하고 시장 경쟁 원리를 바탕으로 자원 활용의 효율성을 높였다. 수출주도형 산업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구한 점도 성장의 원동력이었다.

골드만삭스는 앞으로 남북한이 서로 도와가며 발전한다면 오는 2050년에 한국 경제규모가 일본보다 훨씬 커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100년 전의 한·일 경제상황이 40년 뒤에는 180도 뒤집힐 수 있다는 얘기다. 기적의 역사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우리만의 성공유전자를 계속해서 살려나가야 한다.

 

1911년 한반도 통틀어 차(車) 2대… 2000만대 눈앞

  • 현석원 현대경제硏 금융경제실장

국민생활 업그레이드

         현석원 현대경제硏
              금융경제실장

우리나라의 경제발전 속도가 빨라지면서 시차는 있지만 두 나라 국민들의 생활모습도 엇비슷해지고 있다.

단적인 예가 자동차 보유대수다. 한일합방 직후인 1911년 우리나라 자동차 보유대수는 단 2대였다. 두 대 모두 고종황제의 어차(御車)였다. 당시 우리나라의 교통수단은 가마와 인력거, 달구지 등이 대부분이었다.

1940년에 우리나라 자동차보유대수는 6296대까지 증가했지만 일본은 1940년에 이미 21만대를 넘어서 비교 대상이 못됐다. 하지만 국내 자동차 산업이 발달하면서 격차가 줄었다. 인구 100명당 기준으로 볼 때 한국은 1980년 1.4대로 일본(33.1대)의 24분의 1 수준이었으나 2000년 이후 급속도로 증가, 2008년엔 34.6대로 일본(61.7대)의 절반을 넘어섰다.

교통사고 사망자 증가, 20년 시차 두고 같은 경험

한·일 모두 자동차가 늘면서 교통사고 사망자 수도 급증했는데, 20년 시차를 두고 똑같은 경험을 했다. 우리나라의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1990년에 1만2325명까지 늘었는데 당시 자동차보유대수는 339만대까지 증가했다. 이후 교통체증이 발생되면서 사망자 수가 줄었고, 1679만대를 소유한 2008년 5870명으로 급감했다. 일본도 1970년 자동차 1891만대를 소유한 시기에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1만 6765명까지 증가했지만 이후 줄었다.

2008년에 일본의 자동차보유대수는 7880만대이고, 교통사고 사망자수는 인구 100명당 0.4명으로 한국의 3분의 1 수준이다.

도서관 수, 일본의 절반 수준

문화 수준을 보여주는 대표 지표인 공공도서관 수는 한국의 경우 1913년 4개에 불과했지만, 2007년에 600개까지 증가했다. 하지만 일본은 1960년 742개였고, 지난해 3165개로 우리보다 훨씬 많다. 인구 10만명당 도서관 수를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는 1990년 이후 일본의 절반 수준이 지속되고 있다.

1인당 발전량, 격차 줄여 지금은 비슷

발전량은 우리나라 산업발전과 함께 일본과의 격차가 급격히 줄었다. 한국의 총발전량은 1911년 400만㎾에 불과했다. 비교가 가능한 1921년 양국 발전량을 보면, 한국이 7300만㎾로 일본(51억 1300만㎾)의 70분의 1 수준이었지만 2007년에는 일본의 30% 수준으로 증가했다. 인구 1만명당 발전량을 비교하면, 1921년에는 우리나라가 4만㎾로 일본(90만㎾)의 20분의 1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으나 2005년엔 8000만㎾로 일본(9000만㎾)에 육박해가고 있다.

일본보다 더 빨리 늙어가는 한국

한국이 일본에 비해 고령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일본의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7%를 넘어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건 1970년이었다. 일본은 1995년에 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 14%)에 진입했고, 10년 뒤인 2005년에 초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 20%)로 들어갔다.

반면 한국은 일본보다 30년 늦은 2000년에 고령화사회에 들어섰지만 출산기피 현상으로 ▲2018년 고령사회 ▲2026년 초고령사회 진입이 예상되고 있다.

고령화 사회에서 고령사회로 넘어가는 데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1.38배 빠르고, 고령사회에서 초고령사회로는 1.25배 더 빠르게 다가서고 있다.

 


日, 1908년 대형군함 건조… 韓, 1983년 수주(조선) 1위

 
땀으로 넘은 기술격차
  • 이부형 기자

 

한국이 산업화를 거치고 정보화 시대에서 일본을 제칠 수 있었던 최고 수훈갑 산업은 반도체 가운데 메모리 분야이다. 우리나라는 9년 만에 반도체 분야에서 일본을 넘어서 세계 최고수준에 올랐다.

일본은 1985년 1메가 DRAM을 개발하고, 1988년에는 16메가 DRAM을 만들었다. 이에 비해 한국은 1984년에 일본의 반도체 기술을 들여와 삼성전자가 256k DRAM을 만들어내고 2년 뒤인 1986년에 1메가 DRAM을 개발했다. 이후 64메가 DRAM까지는 일본이 한국을 다소 앞서는 형태로 DRAM 개발이 이뤄졌다.

하지만 1993년에 삼성전자가 메모리 분야 세계 1위로 올라섰고, 이듬해인 1994년에는 세계 최초로 256메가 DRAM을 개발하면서 일본 반도체 업계를 추월했다.

TV산업은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20년 늦게 출발했다. 일본은 1952년부터 흑백TV를 만들어 보급했고, 도쿄올림픽을 4년 앞둔 1960년에 컬러TV를 생산·판매했다. 반면 우리나라에선 1970년 11월 국산 흑백TV가 생산돼 안방에 들어왔다. 컬러TV도 일본보다 20년 뒤인 1980년에 20인치 제품이 생산됐다. 흥미로운 점은 도쿄올림픽처럼 우리나라도 1982년 프로야구 개막을 앞두고 컬러TV가 보급됐다는 것이다.

1990년대부터 TV 시장에서 한국이 부상한다. 일본이 1991년에 평면 브라운관 TV를 판매하자, 6년 후인 1997년 한국은 세계 최대 크기인 30인치 TFT-LCD를 개발, 판매에 돌입했다. 2000년대에는 일본이 2003년에 슬림형 디지털 TV를 판매하자, 한국은 2007년에 세계 최대이자 최고급 LCD TV를 출시했다. 이를 계기로 한국은 세계 LCD TV 시장에서 일본을 제치고 세계 1위가 됐다.

조선산업은 더 격차가 컸다. 일본이 1908년에 대형군함을 만들며 세계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한 반면 우리나라는 1973년에야 현대조선소가 설립됐다. 하지만 1983년 현대중공업이 세계 선박 수주 및 건조량 1위에 오르는 등 지금은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이부형 현대경제연(硏)실물경제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