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G세대 한국인'

'출세 신화' 안 부러워… '나만의 특별한 세상' 찾아 달린다

namsarang 2010. 1. 2. 19:47

['G세대 한국인' 새 100년을 이끈다] [中]

 

 '출세 신화' 안 부러워… '나만의 특별한 세상' 찾아 달린다

성공은 '높은 지위' 아닌 가족과 화목한 삶 의미

풍족하게 자란 세대라 좌절에 면역력 약해

 

2005년 미국 보스턴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그는 미래가 보장된 소년이었다. 185㎝, 76㎏의 다부진 몸매에 운동을 잘했다. 성적은 미국 전체에서 5% 안에 들었다. 품행 바른 우등생만 들어갈 수 있는 '내셔널 아너 소사이어티(National Honor Society)' 회원이기도 했다. 그는 고2 때 매사추세츠주립대 입학 허가를 받았다. 장래희망은 의사 혹은 사업가였다.

박진영이 운영하는 한국의 JYP엔터테인먼트가 재미동포 청소년들을 상대로 실시한 오디션에 재미 삼아 응했다가 단번에 합격하면서, 이 소년의 삶은 뒤흔들렸다. 기로였다. 익숙한 미국에서 안정된 행로를 걸을 것인가, 낯선 한국에서 '스타가 되겠다'는 도박에 가까운 실험을 해볼 것인가.

 ▲내 꿈은 남들과 다르게 사는 것!”아이돌 그룹 2PM 멤버 옥택연이 서울 삼성동 무역센터에서 양팔을 활짝 폈다. 1988년에 태어난 그는 미국 의대에 진학하는 대신 성공의 보장이 전혀 없는 연예기획사 연습생이 되는 길을 택했다. 이처럼 타인의 시선보다 나의 만족을 중시하는 것이 그와 같은 또래인 G세대 한국인들의 특징이다./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그는 무작정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연습생 생활을 택한 것이다. 그뒤 4년. 그는 지금 대한민국 10대들에게 가장 뜨거운 사랑을 받는 스타가 됐다. 아이돌 그룹 2PM의 옥택연(21)이다.

"남들처럼 공부만 알던 학생이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남들과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왔다는 것이 제 가슴을 달아오르게 했습니다. 전혀 다른 세계에 뛰어드는 것이었지만 두려움은 전혀 없었어요.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지 않습니까?"

19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해 태어나 글로벌 시대에 자란 이른바 'G세대' 한국인들이 한해 60여만명씩 속속 성년에 도달하고 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며 순순히 집단에 묻어가던 윗세대와 달리 이들은 "남들처럼 살 수 없다"는 신조를 가지고 있다.

옥택연도 그중 하나다. 1988년에 태어나 초등학교 6학년 때 부모를 따라 이민간 그는 "6년 만에 돌아와 또래들을 만나보니 뜻밖에 저와 같은 인생관을 가진 친구들이 많았다"며 "우리 또래에겐 '나만의 특별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패기가 있다"고 했다.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는 "윗세대 젊은이들은 가족 혹은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성공을 거둔 경우가 많았지만, G세대 젊은이들은 타인의 시선에서 해방돼 자기가 매혹된 일에 진력하는 과정에서 뛰어난 성취를 이룬 경우가 많다"고 했다.

G세대의 인생관을 알아보기 위해 본지 특별취재팀은 한국리서치를 통해 전국의 만 20~24세 남녀 505명을 대상으로 "나는 다른 사람과 달라야 가치가 있다는 생각에 '전혀 동의하지 않을 때' 1점, '매우 동의할 때' 5점을 줄 경우 당신은 몇 점을 주겠는가" 물었다. 고려대 이명진 교수가 2004년 386세대(1960~69년생)·탈냉전세대(1970~78년생)·월드컵세대(1979~85년생) 1000명에게 던졌던 질문이다.

2004년 조사에서 386세대는 2.89점, 탈냉전세대는 3.05점, 월드컵세대는 3.38점이라고 응답했다. 이번 조사에서 G세대 응답자들은 3.7점을 매겼다.

중앙대 국제관계학과 김호섭 교수는 "베이비붐 세대·386세대는 '내가 남의 눈에 어떻게 비칠까' 하는 고민을 많이 한 반면, 윤택하게 자란 G세대는 남다른 개성과 개인적 행복감을 훨씬 중요한 가치로 친다"고 했다.

이런 특성은 "귀하가 꿈꾸는 '성공적인 인생'에 가장 가까운 것은 무엇이냐"는 질문에서도 잘 드러났다. G세대 응답자 과반수(51.5%)가 '큰 걱정 없이 안정적인 수입을 올리며 가족과 화목하게 사는 사람'을 선택한 것이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을 가졌고 그 분야에서 인정받는 사람'(17.4%), '수입은 적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사람'(14.5%)이 뒤를 이었다.

반면 성공적인 인생의 예로 '조직에서 최고의 지위에 오른 사람'을 꼽은 응답자는 극소수(1.8%)에 불과했다. '말단에서 출발, 수십년 멸사봉공해 최고의 지위에 올랐다'는 윗세대의 출세 신화들이 G세대에겐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는 얘기다.

"인생에서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G세대는 1위로 부(27.3%)를 꼽았다. 2위는 자아실현(20.6%), 3위는 사랑(9.5%), 4위는 가족(9.1%), 5위는 건강(9.1%)이었다. 권력(1.4%)과 우정(1.2%)을 택한 이는 극소수였다.

G세대가 성공과 행복의 조건으로 꼽은 항목은 윗세대 눈에 너무 영악하게 비칠 수 있다. 그러나 G세대는 '재능 있는 사람이 최선을 다하면 사회가 공정하게 평가할 것'이라는 밝고 순박한 믿음을 가진 세대이기도 하다. "다른 조건과 상관없이 최선의 노력을 다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다섯명 중 세명꼴(58%)로 '매우 그렇다'(17%) 혹은 '그렇다'(41%)고 답한 것이다.

이처럼 G세대 스스로는 자기 미래를 낙관했지만, 전문가들 사이엔 우려의 시각도 있었다. 건국대 의대 신경정신과 하지현 교수는 "G세대는 풍족하게 자란 탓에 실연·성적 저하 등 윗세대 같으면 2~3일 고민하다 끝낼 문제로 엄청나게 우울해하고, 군대 가서도 윗세대보다 더 힘들어한다"고 했다. 군이 과거처럼 폭력적이거나 억압적이지 않은데도, 남들과 같이 먹고 자며 부대끼는 것 자체에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이다.

 

G세대도 "성공의 최대 조건은 인맥"

학연·지연 아닌 인터넷 등 통한 창조적 관계

 

혹시 '인맥'에 대한 집착은 한국인 DNA의 일부인 걸까? 본지 특별취재팀이 한국리서치를 통해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G세대는 대부분의 항목에 대해 윗세대들과 선명하게 구분되는 응답을 했다. 이들이 거의 유일하게 '지극히 한국적'으로 답한 질문이 "우리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였다. 1위가 인맥(20.6%)이었다. 이어 실력(20.4%)·돈(18%)·인간성(16.2%) 순이었다. 글로벌 마인드와 외국어 능력(9.7%)·학벌(9.1%)·외모(1.8%) 같은 응답도 나왔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G세대가 인맥을 중시하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인터넷·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얼굴 한 번 보지 않고도 다양한 방식의 유대를 맺는 G세대들의 생활양식이 반영된 것 같다"며 "G세대의 인맥은 윗세대가 생각하는 인맥과는 다소 다르다"고 했다.

한국창조산업연구소 고정민 소장은 "유년 시절부터 인터넷에 단련된 G세대들은 사람들 사이에서 관계를 맺는 방식이 윗세대보다 훨씬 유연하다"며 "지연·학연 등을 통한 단선적 인맥에 의존하던 윗세대와 달리 자신들의 취향과 기호를 반영한 창의적 관계망이 발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원대 언론정보학과 김유정 교수는 "이전 세대가 인생살이에 필요한 도움을 얻기 위해 학연·지연으로 묶인 특정 집단 구성원들과 수시로 대면 접촉을 해왔다면, G세대는 인터넷 커뮤니티나 미니홈피 등을 통한 비(非) 대면접촉을 주로 하면서 수시로 이합집산한다"고 했다. 김 교수는 "G세대는 평소에도 인터넷과 휴대전화 없는 삶을 상상하기 힘든 생활을 한다"며 "동창회 같은 오프라인 집단보다 정보통신기술을 매개로 맺은 온라인 인맥에 더 강한 소속감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G세대 "좋아하는 일 할 것"… 부모들 "명예·권력 원해"

 

본지·한국갤럽 집단인터뷰

 

G세대와 그 부모 세대가 인생을 대하는 태도는 어떻게 다를까? 본지 특별취재팀은 한국갤럽과 함께 포커스그룹 인터뷰를 실시했다. G세대 대학생(1987~89년생·21~23세) 8명과 부모 세대(1958~63년생·47~52세) 8명을 각각 집단 인터뷰했다.

"어떤 인생이 '성공한 인생'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서 G세대들은 "하고 싶은 일을 속박 없이 하는 것", 바꿔 말해 '자기 생각대로 사는 삶'에 높은 가치를 뒀다. 물질적인 부를 추구하는 경우 그 이유가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인 경우가 많았다.

이준희(21)씨는 "물질적으로 풍요롭다고 해서 행복한 삶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비록 금전적으로 궁핍해 험한 길이 될지라도 내가 도전해보고 싶은 일에 제대로 부딪쳐보며 사는 게 진정 가치 있는 삶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다른 대학생 A(22)씨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평생 살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행복한 일이 없을 것 같다"며 "하지만 그렇게 살기 위해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당당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갖추는 것이 우선돼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베이비붐 세대와 초기 386세대로 구성된 부모 세대는 같은 질문에 대한 응답에서 "명예와 권력을 얻는 삶", 바꿔 말해 '타인의 인정을 받는 삶'에 큰 가치를 뒀다. 박연우(50·자영업)씨는 "한국 사회에서는 명예와 권력을 가지면 물질적 풍요가 따라오게 돼 있다"며 "이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가족 간 화목이 조금 부족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조희순(49·주부)씨는 "명예와 권력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꼭 필요한 가치가 아니겠느냐"며 "명예를 얻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을 받는다는 뜻이고 권력을 갖게 되면 스스로 만족감이 커진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