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등장하는 장애인은 절름발이·애꾸눈이·언청이·곰배팔이·앉은뱅이·난쟁이·귀머거리·배불뚝이·혹부리·장님·무턱이·곱사등이·육손이·육발이 등이다. 소설과 함께 매번 재미있는 삽화가 등장한다.
1909. 8. 29~1910. 8. 29
"나는 곰배팔이오. 20세기 경쟁시대를 당하여 국권을 확장하던지 민족을 보호하던지 모두 완력으로 하는데, 남보다 팔이 두서너 개 더 있어야 이 빈약한 나라를 구할 터인데 본래 있는 두 팔도 남과 같이 다 쓰지 못하니 어찌 원통치 아니하오리까."
일본 강점 직전인 1909년 8월 19일부터 10월 12일까지 '대한민보'에 실린 사회 풍자소설 《병인간친회록(病人懇親會錄)》의 한 부분이다. 굉소생(轟笑生)이란 작가가 쓴 이 소설은 육체적 불구를 운명으로 여기고 살아오던 신체 장애인들을 서울 한복판으로 불러모아 '병인간친회'라는 단체를 조직하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등장하는 장애인은 절름발이·애꾸눈이·언청이·곰배팔이·앉은뱅이·난쟁이·귀머거리·배불뚝이·혹부리·장님·무턱이·곱사등이·육손이·육발이 등이다. 소설과 함께 매번 재미있는 삽화가 등장하는데, 8월 26일자에는 장님 그림 좌측 위에 '눈이 멀어 마음만 앞서가고, 밭이랑에 서서 파만 두드리네'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조선시대 장애인은 사회 밑바닥에서 철저히 소외되고 차별받았다. 가족들조차 '호적조사'에서 이들을 누락시켰는데, 이는 가족 숫자가 곧 세금과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장애인 숫자를 파악하기 어려운 이유다. 가령 소설 '심청전'에서 "대궐 문밖 당도하니 봉사 누만명이 모두 다 모였구나" 하였지만, 실제 맹인에 대한 통계조사는 일제 강점기인 1921년 처음 이루어져, 전국에 8972명(일본인 93명 포함)임이 밝혀졌을 정도다.
이런 사회적 배경에서 소설 속의 장애인들은 간친회를 조직한 뒤 울분을 토한다. 한쪽 팔을 못 쓰는 '곰배팔이'는 이렇게 외친다.
"나는 세상 사람들이 개나 도야지라고 한대도 조금도 노여울 것 없소마는, 생각할수록 딱하고 불쌍하기는 두 팔 두 발이 멀쩡하면서 가옥을 남이 웅거하거나 제 아비를 누가 능욕하거나 제 자식을 누가 학대하거나 열 손가락 한번 까딱 못하고 처분만 바랍니다 하는 그 위인들이오니, 아무쪼록 회원 여러분은 사람마다 붙들고 권고하여 하늘이 주신 두 팔을 속절없이 썩여 내버리지 말고 덤비는 범과 사자를 힘써 막아 생병신 노릇을 말게 하시기를 바라고 또 바랍니다."
《병인간친회록》은 최하층민의 목소리를 빌려 일본의 침략에 아무 대응도 못하고 사리사욕에만 눈이 먼 지배층의 무기력과 도덕적 타락을 질타한다. 사지가 멀쩡한 자들이 육체적 불구보다 더 심각한 '정신적 불구상태'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소설은 이런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교육을 강조한다. 이 작품 외에도 《소경과 앉은뱅이 문답》, 《향객담화》, 《거부오해》, 《절영신화》 등에 소외계층이 등장한다.
1910년 나라를 잃으면서 풍자소설은 중단됐다. "지배층은 생병신 노릇을 그만하라"는 장애인의 외침도 끊어졌다. 그러나 이들 작품은 소외 계층을 여론 주도 세력으로 등장시켰을 뿐만 아니라, 주인공들의 토론과 연설을 통해 민주적인 여론 수렴 절차가 한국 사회에 필요함을 역설했다. 소설 속에 '근대적 가치'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