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
사람들은 '행운' 하면 제일 먼저 숫자 7을 생각한다. 동양에서는 죽은 자의 영혼이 육체에서 풀려나 자유로워지는 데는 일곱 단계의 시간 단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7일 단위로 모두 일곱 번 제사를 지냈다.
7은 그리스 신화에서도 중심을 이루는 수였다. 아폴로가 세상에 나온 날은 7일이었다. 로마인들에게 7은 길한 수였고 행운의 수여서 원형경기장에서 벌어지는 경기에서 많이 쓰였다. 또한 중국에서 7은 여자의 수로 일컬어지는데, 중국인은 칠삭둥이는 살 수 있어도 팔삭둥이는 살지 못한다고 믿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속죄의식을 치를 때 피를 일곱 번 뿌렸다. 결혼식도 7일, 추모기간이나 큰 축제도 7일간이었다. 불교에서도 석가모니는 7년 동안 구도의 고행을 했으며, 명상 수행에 들어가기 전에 보리수 나무를 일곱 바퀴 돌았다. 극락은 일곱 천계로 돼 있으며, 현세에 성불을 이루기 위해서는 일곱 가지 종교적 품행이 요구됐다.
유다인들에게 '7'이라는 숫자는 매우 중요하다. 1주일 중에 7일째 되는 날이 안식일이다. 또한 7년째 해에는 밭을 갈지 않고 묵혀 쉬게 한다. 그리고 49년째 되는 해는 대단히 경사스런 해로 희년(禧年)이라고도 표현한다. 구약성경에서도 노아의 방주에 짐승들이 들어간 7일 후 홍수가 땅을 덮었으며, 노아는 땅에 물이 걷히고 나서도 7일을 기다려 비둘기를 내보냈다. "그는 이레를 더 기다리다가 다시 그 비둘기를 방주에서 내보냈다"(창세 8,10).
그러나 7이 반드시 희망과 행운을 상징하는 것은 아니다. 숫자 7이 인간의 일곱 가지 죄악을 가리키기도 한다.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 나온다"(마르 7,22).
성경에서 일반적으로 숫자 7은 완전수이다. 예를 들면 파스카 축제와 무교절에 대한 설명에서 7이란 숫자가 자주 나온다(레위 23,6-8). 또한 7이란 숫자는 순결한 신앙(로마 11,4)이나 완전한 안식을 의미한다. "사실 일곱째 날에 관하여 어디에선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하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이렛날에 쉬셨다.'"(히브 4,4).
칠 년째 되는 해는 땅에 안식을 주지 않으면 안됐다. "그러나 일곱째 해는 안식년으로, 땅을 위한 안식의 해, 곧 주님의 안식년이다. 너희는 밭에 씨를 뿌려서도 안 되고 포도원을 가꾸어서도 안 된다"(레위 25,4). 따라서 칠 년마다 농사짓던 밭을 묵히는 규칙이 있었다.
예수님은 일곱 번씩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하라고 하신다.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가와,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21-22).
요한묵시록에는 거의 각 장마다 일곱이라는 숫자가 나온다. 그리스도교에서 성령의 칠은과 7성사 등 일곱은 매우 중요한 숫자로 돼 있다. 이처럼 일곱은 '완성'을 나타낸다. 요한묵시록에 나오는 일곱교회는 곧 교회의 보편성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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