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기’라는 성서 이름은 어떻게 지어졌나요?
히브리어 역대기는 본래 한 권이었고, 그 이름은 “다브레 하야밈”(그 때에 있었던 사건들)이라 하였어요. 그런데 그리스어 성서에서는 솔로몬 왕의 즉위를 중심으로 이 성서를 상하 두 권으로 갈랐으며, 또한 이 성서가 사무엘서와 열왕기에 쓰여진 내용을 보완하고 있다고 보아 그 이름을 “파랄레이포메나”(빠진 사항들)라고 지었어요. 라틴어 성서인 불가타 성서도 처음에는 그리스어 성서 이름을 쓰다가 곧 예로니모가 주해에서 붙인 “하느님 역사 전체에 관한 역대기”라는 긴 이름을 즐겨 쓰게 되었어요. 이 이름을 줄인 “역대기”(歷代記)라는 이름이 널리 알려지면서 오늘날까지 통용되고 있답니다. 역대기는 히브리 성서에서 ‘성문서’편에 속하며, 판관기-열왕기에 이르는 신명기계 역사서와 구별하여 에즈라 느헤미야서와 함께 역대기계 역사서라고 불립니다. |
누가 썼나요?
탈무드 전승에서는 에즈라가 시작하여 느헤미야가 역대기를 끝냈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다른 구약성서와 마찬가지로 저자가 누군지 정확하게 알 수 없어요. 다만 바빌론 포로생활에서 돌아와 유대 공동체를 재건하면서 갖가지 고초를 겪으면서도 그 공동체를 하느님의 공동체로 만들려는 열망이 뜨거웠던 학자였으리라고 봅니다. 그는 모세오경과 여호수아서, 열왕기 등 성서 이외에 스무 가지가 넘는 역사서를 참고하여 이 성서를 엮으면서 하느님의 뜻을 뚜렷하게 부각시켰지요. 오늘날 학자들은 이 사람을 흔히 역대기 사가, 역대기 편찬자라고 부릅니다.
언제 쓰여졌나요?
정확한 집필시기 역시 알 수 없어요. 역대기 사가가 신명기계 역사서를 바탕으로 하고 전해 내려온 여러 자료를 참고하여 썼고, 그 뒤로는 여러 차례 가필되었다고 보아요. 아마도 그 시대는 페르시아 시대, 기원전 4세기나 3세기쯤 되리라고 여겨져요.
왜 썼나요?
역사서는 예나 지금이나 단순히 예전에 있던 사건에 대한 기록이 아니죠. 그것은 사건을 새롭게 해석하여 ‘지금 여기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교훈과 비전을 던져주어요. 모든 것이 무너진 다음 새로운 공동체를 세우는 포로기 이후의 유대인들에게, 역대기는 새로운 꿈과 용기를 던져주려고 해요. 역대기를 읽어본 분들은 알겠지만, 역대기는 유다 왕조, 특히 다윗 왕을 유난히 강조하고 있어요.
즉, 역대기는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가장 번창했던 다윗 시대의 역사를 부각시키면서 보잘것없는 현재 상태에서도 힘을 잃지 말 것을 이야기해 주는 거죠.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새로운 공동체의 방향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다윗은 역사상의 다윗은 역사상의 다윗이라기보다 이상적으로 그려진 다윗의 모습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야훼 하느님께 지극히 성실했던 다윗을 보여주면서 그렇게 충실히 하느님을 섬기면, 당신과의 계약을 충실히 지키시는 하느님께서 다시금 이 공동체를 보살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불어넣고 키워주려는 뜻이 가득 담겨 있어요. 더불어 예루살렘 성전 제의를 올바로 지키는 예배 공동체가 포로시대 이후 유대 공동체가 나아갈 방향이라는 점도 함께 지시되고 있죠.
<나눔과 새김>
유대인들에게 다윗이 그러하듯, 우리가 명시적이든 묵시적이든 본받고자 하는 모델은 누구일까요? 나와 자녀, 교회 공동체의 경우를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역대기 상권
아담으로부터 시작되는 족보(1역대 1,1-9, 34)
* 모세와 아론은 어느 지파, 누구의 자손입니까?(5,29)
역대기는 인류의 첫 사람인 아담으로부터 족보를 시작합니다. 계속해서 이스라엘의 열두 아들 중 유다지파가 소개되고, 그중에서도 다윗의 가문이 집중적으로 소개됩니다. 이어서 남쪽과 요르단강 동편에 살던 지파들의 명단이 나열됩니다.
그 뒤에는 특별한 영토를 갖지 못한 레위 지파가 퍽 소상하게 소개됩니다. 그리고 북쪽 지파와 베냐민 지파가 짧게 언급되면서 족보가 끝납니다. 왜 이렇게 족보가 장황하게 나올까요? 이 모든 것은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갔다가 이스라엘로 되돌아온 사람들의 족보입니다. 이것을 소개하는 까닭은 이스라엘의 참된 선민이 누구인지를 한 처음으로 소급하여 밝히기 위해서입니다 (루가 3,23-38 참조).
뛰어난 왕인 다윗(1역대 9, 35-16,43)
다윗이 부른 감사의 노래를 다시 한 번 읽어보십시오(16,3-36)
이스라엘의 첫 왕인 사울의 계보가 짧게 언급된 뒤 그가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거역한 죄 때문에 비참하게 죽었다고 밝힙니다. 그럼으로써 사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다윗의 모습이 한결 빛납니다. 다윗은 온 이스라엘 사람들의 추대를 받아 왕이 되었고 예루살렘을 정복하여 자신의 도성으로 삼습니다. 각 지파에서 다윗을 따르기 위해 모여온 용사들의 명단이 소개됨으로써 다윗의 덕이 드러납니다. 다윗은 하느님의 도움으로 불레셋족을 무질러 명성을 널리 떨칩니다.
마침내 다윗은 사울 때 잃어버렸다가 간신히 되찾은 야훼의 궤를 키럇여아림 땅에서 모시고 오베데돔의 집으로, 그 다음에 예루살렘으로 모시고 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을 섬기라고 뽑으신 레위인들이 계약궤를 정중하고도 즐거운 마음으로 모시고 와 번제와 친교제를 바치고 감사의 노래를 부릅니다. 이 모든 절차는 하느님을 모시기에 합당하게 진행됩니다. 이런 모습을 통해 다윗이 하느님을 얼마나 극진하게 잘 섬겼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성전을 지을 준비를 마치고(1역대 17,1-29,30)
다윗은 자신의 제물을 누가 준 것이라고 고백합니까?(29,11-17)
다윗이 하느님의 집을 지으려고 나서자, 하느님께서는 나단 예언자를 시켜 그 일은 자식대에 가서 해야할 일이라고 일러주시며 다윗의 왕조를 영원히 튼튼하게 지켜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다윗은 주변국가를 복속시키며 번영을 누리지만, 사탄에게 넘어가 병적조사를 함으로써 하느님의 벌을 받습니다. 다윗은 하느님께 번제와 친교제를 드려 잘못을 속죄한 뒤, 성전을 지을 준비를 갖춥니다. 금과 은,목재 등 재료 이외에도 레위인들을 찬양대와 수위대, 창고관리인과 행정직,사제반 등으로 편성합니다.
마지막으로 늙은 다윗은 솔로몬과 온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은혜를 상기시키며 하느님께 바칠 성전을 기쁜 마음으로 온 정성을 쏟아 지을 것을 거듭거듭 당부한 뒤 숨을 거둡니다. 이 대목에서 다윗은 정치적인 왕을 뛰어넘어 이스라엘 공동체의 기초가 될 성정과 제의를 준비하는 특별한 인물로 소개됩니다.
<나눔과 새김>
성전과 제의는 하느님을 섬기는 데 필요한 내용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성당과 전례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습니까?
역대기 하권
성전을 세운 솔로몬(2역대 1,1-9, 31)
하느님께서 솔로몬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표시로 하늘에서 내리신 것은 무엇입니까(7,1)
솔로몬은 하느님께 청해 얻은 슬기와 지식으로 이스라엘의 번영을 가져왔습니다. 그런 다음 예루살렘의 모리야산에 성전을 지은 뒤에 계약궤를 모시고 하느님께 기도와 찬양을 바칩니다. “참마음과 뜻을 다쏟아 참회하고 당신의 이름을 기리며 간절히 빌거든” 이스라엘의 모든 잘못을 용서해 주시고 기도를 들어달라고 청하는 솔로몬의 기도를 받아들이신 하느님은 그의 꿈에 나타나 다윗과 맺으신 계약을 갱신하십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주셨기에 가능했던 것임을 역대기는 거듭 밝힙니다.
분열된 왕국과 남유다의 왕들(2역대 10,1-28,27)
모압과 암몬 족이 쳐들어왔을 때 여호사밧은 어떻게 기도하였습니까?(20,6-12)
솔로몬의 아들인 르호보암 시절에 이스라엘은 둘로 나뉩니다. 그런데 북 이스라엘의 모든 사제와 레위인들을 비롯하여 야훼를 찾기로 결심한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내려 왔습니다. 열왕기에는 없는 이 구절을 통해 예루살렘 성전 제의가 정통임을 역대기는 강조합니다. 뿐만 아니라 르호보암 이후 북 이스라엘의 왕들을 전혀 소개하지 않고 오직 남유다의 왕들만 언급합니다. 이로써 예루살렘 및 다윗왕조와 분리된 북 이스라엘은 야훼 하느님과 멀어진 공동체라고 생각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유다의 왕들에 대한 내용은 그들이 하느님께 얼마나 온전히 충실했냐에 따라 그들의 삶과 공동체의 운명이 좌우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야훼의 법을 저버린 르호보암은 이집트 왕 시삭의 침공을 받지만, 야훼께 부르짖은 아비야는 협공을 받는 처지에서도 승리를 거둬요. 아사와 여호사밧은 주변국가와 싸우면서 하느님께 의지할 때는 승리하지만 신뢰하지 않을 때는 지고 맙니다. 야훼의 눈에 거슬리는 정치를 편 여호람과 아하지야는 각각 병을 앓다 죽거나 살해되고 맙니다.
히즈키야의 종교개혁에서 국가의 멸망까지(2역대 29,1- 36,23)
백성들의 기도가 하늘에 미쳤던 때는 어느 축제중이었습니까?(30,21-27)
역대기 하권에서 히즈키야에 관한 기사는 솔로몬에 이어 두 번째로 분량이 많습니다. 그 이유는 히즈키야가 야훼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정화하고 강화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는 성전을 정화한 뒤 속죄제와 번제를 드렸습니다. 또 온 이스라엘과 유다에 사람들을 보내어 예루살렘 성전에서 과월절과 무교절을 함께 보내자고 초대하여, 그들과 더불어 마음을 기울여 축제를 지냅니다. 이 모든 일을 보시고 하느님은 복을 주시고, 아시리아 왕 산헤립이 쳐들어왔을 때도 물리쳐 주십니다. 그러나 그 이후의 왕들은 하나같이 야훼께 충실치 않아 외세에 시달리다가 마침내 시드키야 시절에 바빌론에게 망하는 벌을 받고 맙니다. 하지만 역대기는 맨 마지막에 하느님께서 페르샤 왕 고레스의 마음을 움직이시어 유대인들의 귀환을 허락한다고 적음으로써, 당신 말씀에 충실하신 하느님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곧 하느님께 신뢰와 희망을 두는 이는 결코 외면받지 않으리라는 가르침이죠.
<새김과 나눔>
히즈키야 시절에 회개한 이스라엘 백성은 공동체 전체로 하느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신앙인들이 받는 하느님의 축복은 어떤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