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떠난 희극인 배삼룡(84)씨는 고 이기동·서영춘씨, 구봉서씨 등과 함께 대표적인 1세대 코미디언이었다. 배삼룡씨는 스무살에 악극단 '민협'에 입단해 연예인 생활을 시작, 한국의 대표적 코미디언이 됐다.
배씨처럼 1세대 코미디언들은 대부분 악극단(춤·노래·재담 등을 공연하는 극단) 출신이었다. 코미디가 1920~30년대 유랑극단 무대에 뿌리를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제시대 유랑극단은 주로 최루성 신파를 무대에 올리며 우스꽝스러운 '막간극'을 올렸다. 무대에 올라 익살을 부리며 관객들의 지루함을 덜어주던 재담꾼이 바로 코미디언의 시초다. 막간극의 재담꾼은 주로 넘어지고 얻어맞는 슬랩스틱 코미디를 구사했다. 최초의 재담꾼으로는 석와불(石臥佛·출생 연도 미상)이 꼽힌다. 간드러진 여자 목소리를 잘 흉내낸 신불출(申不出·1905~월북 후 숙청)씨도 대표적인 재담꾼이었다.
해방 이후 유랑극단이 악극단으로 정착하면서 본격적인 희극 시대가 열렸다. 대표적인 1세대 코미디언 구봉서(84)씨는 1945년 '태평양가극단'에서 악사로, 송해(83)씨 역시 1955년 '창공악극단'에서 가수로 데뷔한 코미디언이다. 악극단에 소속된 희극인들은 쇼 무대와 영화를 종횡무진하며 코미디를 펼쳤다. 배삼룡씨는 '오부자'(1958)의 '막둥이'로 유명세를 탔고, 고(故) 서영춘(1928~1986)씨는 1965년 코미디 영화 '여자가 더 좋아'의 여장 연기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쇼 무대·영화를 중심으로 한 희극인 활동은, 1960년대 TV 방송국이 본격 개국하면서 변화를 겪는다. 1961년 12월 31일 KBS를 시작으로 TBC, MBC가 줄줄이 TV 방송을 시작하면서 시청률 경쟁에 돌입한다. 후발주자인 TBC와 MBC는 코미디를 경쟁적으로 배치했다. 최초의 코미디 프로그램은 TBC 라디오가 1968년 방송한 '웃음의 파노라마'로, 송해·박시명·이상한·이상해씨 등이 출연했다. TBC가 선보인 '살살이 서영춘'도 뉴스를 풍자한 라디오 코미디 프로그램. 여기서 고 서영춘은 "가갈갈갈, 안녕하십니까"란 유행어를 만들어 큰 인기를 얻었다.
1969년 MBC가 방송한 '웃으면 복이 와요'는 첫 TV 코미디 프로그램이었다. 구봉서·송해·배삼룡 등 당대 최고의 코미디언이 총출동해 장기와 재담을 늘어놓았다. '웃으면 복이 와요'가 인기를 끌자, TBC는 '막둥이 고고고', '코미디 럭키7', '코미디 극장', '이게 뭡니까' 등으로 맞섰다. MBC와 TBC의 오락 프로 전쟁은 간판 PD 쟁탈전과 배삼룡 납치전 등 웃지 못할 해프닝도 낳았다.
1980년대가 되면서 악극단 출신 코미디언의 전성기는 조금씩 기운다. 군사정권이 '저질 코미디를 한다'는 이유로 배삼룡·이주일 등 일부 코미디언의 출연을 금지한 것이다. 몸으로 웃기는 슬랩스틱 연기를 의미하는 '코미디언'보단 재치있는 입담을 강조한 '개그맨'이란 말이 본격적으로 사용된 것도 이때부터다.
[대한민국 제1호]
코미디언-해방후 배삼룡 구봉서씨 등 才談으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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