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카네기홀에서 6·25 참전용사 초청공연 마치고 돌아온 인순이
"당신들 모두 제 아버지" 관객들, 태풍 같은 박수
"서로가 고마웠던 무대… 그분도 멀리서 보고계실것"
마음속 응어리를 모두 풀어내고 온 걸까? 연락이 닿지 않는 아버지, 그 아버지가 사는 나라 미국에서 성황리에 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인순이(53)는 들뜬 표정과 큰 몸짓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1999년에는 아버지 생각이 머릿속에 꽉 들어차 무대에서 제 기량을 보여주지 못했어요. 이번에는 그런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아 오로지 노래하는 사람으로 관객을 만났어요. 그런데 마지막 공연을 마치고 커튼이 내려간 다음 감정이 북받치는 거예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고 말았어요. 무슨 심정이었을까요? 이제 아버지에 대한 한(恨)과 원망 그리고 그리움을 모두 보내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이상하게 서러운 눈물이 쏟아지더라고요." 이내 그의 눈시울은 촉촉해졌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 인기가 폭발하고 있는 혼혈 가수 인순이가 뉴욕 카네기홀과 LA 노키아 극장에서 호연을 펼친 뒤 귀국했다. 지난 24일 서울 도곡동 그의 소속사 사무실에 나타난 그는 "제 인생 최고의 공연을 마치고 돌아왔다"며 "제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걸 무대에 쏟아냈기에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실력파 클래식 뮤지션들이 주로 서는 카네기홀 공연은 그에게는 영예로운 기회였다. 그리고 그는 기립박수 세례를 받으며 무대에서 내려왔다.
- ▲ 미국 뉴욕·LA 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인순이는“외국에 나가면 교민들이 저를 더 특별한 가수로 생각해주는 것 같아 자부심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 이준헌 객원기자 heon@chosun.com
"'딸에게'가 흘러나오니까 무대 근처 객석에서 계속 훌쩍이는 소리가 나오는 거예요. 고국에 어머니를 두고 온 여성 관객들의 마음이 아팠던 거죠. '아버지'를 부르자 이번에는 남성 관객들이 눈물을 흘리시더군요. 그래서 신나는 올드팝으로 숙연해진 분위기를 바꿨습니다."
기막힌 우연도 있었다. 인순이가 무대에서 한복을 입고 옛 가요 '고향설'과 '가고파'를 불렀는데 '고향설'의 가수인 전설적 스타 고(故) 백년설씨의 부인과 아들이 객석에 있었던 것. "사모님이 펑펑 우셨대요. 잊혀진 줄 알았던 남편의 노래가 카네기홀에서 울려 퍼지니까 감격스러우셨던 거죠. 전혀 예상하지 못하셨던 일이었던 겁니다."
그는 카네기홀 공연에 6·25전쟁 60주년을 기념해 참전용사 100여명을 초청했다. "'당신들은 모두 제 아버지다. 당신들의 희생정신에 우리 국민들은 모두 감사하고 있다'고 말하자 교민들을 비롯한 전 관객이 태풍이 이는 듯한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며 "그분들은 공연이 끝난 뒤, '우리를 잊지 않고 기억해줘 고맙다'고 했다"고 말했다. "어떤 분은 '이런 환희는 이제 마지막일 것 같다'며 '한국에서 목숨을 잃은 친구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도 사라졌다'고 하셨어요. '매일 6·25전쟁에서 사망한 친구들을 위해 기도하는데 오늘 밤은 너희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다고 기쁘게 전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씀하신 분도 있었죠."
그는 참전용사들을 보며 얼굴도 모르는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렸다. "오래전 연락이 끊어진 아버지지만 어딘가에서 가수로 성공한 제가 꿈의 무대인 카네기홀에서 멋진 공연을 펼쳤다는 소식을 들으셨을 것"이라는 믿음과 함께. 그러나 그는 "애써 아버지를 찾고 싶은 생각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분의 가정을 혼란스럽게 할 필요는 없잖아요. '제가 잘 지내고 있다'는 것만 알고 계신다면 더 바랄 게 없어요."
그런 그는 요즘 '아버지'를 부를 때마다 특별한 사명감을 느낀다. 자신의 개인사가 노랫말과 얽혀 사람들에게 더 큰 감동을 준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린아이처럼 구김살 없는 웃음과 함께 속내를 털어놓는 그는 마음속에 더 큰 아버지를 담아 돌아온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