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100년전 우리는

[86] '아편을 먹고 자폐(自斃)하니'

namsarang 2010. 4. 10. 22:39

    [제국의 황혼 '100년전 우리는']

 

[86] '아편을 먹고 자폐(自斃)하니'

  • 권영민 서울대 교수·한국문학

1909. 8. 29.~1910. 8. 29.

대한매일신보 1909년 6월 27일 잡보란에는 '녹록한 남자'라는 짤막한 기사가 실려 있다. 서부 약현(藥峴)에 사는 철도역부 강선근이란 사람의 자살 소식이다. 강선근은 그 처가 며칠 전 집을 나가 도망해 버리자 그 일로 고민하다가 아편을 먹고 자폐(自斃·자살)하였다는 것이다. 당시 신문의 잡보란을 들여다보면 자살에 관한 기사가 유난히 눈에 띈다.

전동(典洞) 도화서(圖畵署) 골에 사는 박성칠씨가 무슨 사단인지 아편을 먹고 죽었다('신보' 1909. 6. 26.)는 기사도 있고, 영국인 선교사 카트리아트씨가 회당 내 자기 침실에서 자살했다(〃, 1909. 6. 24.)는 보도도 있다. 북부 장동에 사는 홍도라고 하는 여인이 무슨 일 때문인지 약을 먹고 죽었다(〃, 1909. 4. 20.)는 기사도 보이고, 어떤 사람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인왕산 상봉에 올라가서 죽었는데 미투리 한 켤레를 가지고 주머니에는 백통 돈 몇 십냥을 넣었거늘 순사가 그 사람의 거주를 탐지한즉 영추문(迎秋門) 밖 사는 사람이라고 한다(〃, 1909. 3. 31.)는 기사도 있다.

이해조(왼쪽 사진), '강상촌(江上村)'(오른쪽 사진).
자살의 원인에 대해서는 '근래 한국인이 아편을 먹고 자폐하는 자가 많은지라 인명에 관계되는 손해가 적지 아니하므로 한국에 나와 있는 청인(淸人)의 아편 매매하는 것을 엄금하기 위해 청국 당국자와 교섭한다'(〃, 1909. 6. 26.)는 보도가 나온다.

이 시기의 신문뿐만 아니라 대중 독자들에게 널리 읽힌 신소설에도 자살은 흔하게 등장한다. 이인직의 '혈(血)의 누(淚)'에서 여주인공 옥련의 어머니는 전란에 휩싸여 가족이 모두 흩어져 생사를 알 수 없게 되자 자살을 결심한다. 주인공 옥련도 일본에서 생활하다가 양모의 변심으로 생활이 힘들어지자 곧바로 자살을 기도한다. 신소설 '귀(鬼)의 성(聲)'의 여주인공 길순은 자신을 양반 세도가에게 첩실로 넘긴 아버지를 원망하며 자살하고자 한다. '치악산(雉岳山)'의 여주인공 이씨 부인도 남편이 일본 유학을 떠난 후 시어머니의 미움이 커지자 자살을 꾀한다.

이인직의 신소설만이 아니라 이해조의 '화세계(花世界)', '목단병(牧丹屛)', 최찬식의 '안(雁)의 성(聲)', '해안(海岸)', '춘몽(春夢)', '강상촌(江上村)'(책 표지·1911년) 등에서도 주인공들은 강물에 투신하거나 약을 먹고, 목을 매어 스스로 죽음의 길을 택한다. 물론 여기 등장하는 자살은 대체로 미수에 그친다. 서사적 전환을 위해 작가가 설정한 소설적 장치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자살의 장면에서 구출되고 새로운 삶을 경험한다.

전통사회에서는 자살을 공론(公論)의 장으로 끌어낸 적이 없다. 하지만 1910년을 전후한 시기에 자살이 공개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하였다는 사실은 주목을 요한다. 소설 속의 자살은 대개 가족과의 갈등이 원인이거나 인신매매·유괴·강간 등 폭력에 대한 저항 수단으로 선택된다. 경제적 고통이 거론되는 경우가 드문 점이 특이하다. 나라가 무너지고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할 곳조차 없는 암울한 시대의 일측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