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직 현장

강복 한 번... 더?

namsarang 2010. 4. 12. 14:34

[사도직현장에서]

 

강복 한 번... 더?


                                                                                                                                                노유자 수녀(성 바오로 가정호스피스센터장)


"딩동~ 딩동~"
 불암산을 오르는 등산객들이 '성 바오로 가정호스피스센터' 현판을 보고 종종 벨을 누르곤 한다. 가까운 지인이 말기 암환자로 진단 받았는데 이곳 센터에서 받아줄 수 없냐는 질문이 이어지곤 한다.
 하지만 우리 센터는 주로 가정방문을 통해 환자와 가족을 돌보는 가정호스피스를 하는 곳이라 입원실이 없어 이런 부탁을 받을 때면 그분들의 고통을 충분히 덜어주지 못해 안타깝다.
 2007년 3월 경기도 남양주시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분원 별채에서 센터 문을 연 뒤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호스피스 일을 진행한지 1년여 만인 2008년 5월 현판 축복식을 가졌다. 현판식은 센터 가족과 회원 모두에게 기쁜 일이며 내게도 결코 잊을 수 없는 감격스런 일이었다. 그간 아낌없는 사랑을 보내주신 고마운 분들을 현판식에 초대하고 싶었다.
 현판식을 보름 앞두고 서울 혜화동 주교관에 계신 김수환 추기경님을 찾아뵈었다. 당시 병환으로 많이 힘드셨을 터임에도 추기경님께서는 평소와 같이 온화한 미소를 지으시며 반가이 맞아 주셨다.
 "호스피스 일은 잘하고 있지? 수녀가 오래전부터 그렇게 하고 싶어 하던 호스피스일을 하게 돼 기뻐. 잘할 거야."
 이런저런 환담 중에 강남성모병원 CT(컴퓨터 단층촬영)기를 시운전하신 추기경님이 "수녀, 나 말이야. 나중에 '웅~'소리 내는 기계에 안 들어가고 수녀들이 하는 호스피스센터에서 죽었으면 좋겠어"라고 하셨던 말씀을 떠올리기도 했다.
 추기경님은 몸이 힘들어 현판식에 참석하기는 어렵다며 열심히 하라는 당부 말씀과 함께 강복을 주셨다. 잠시 후 강복을 한 번 더 주십사하는 부탁에 "저런, 왜 강복이 또 필요해?"라고 물으셨다. 나는 "사실은 추기경님 비서 수녀가 사진을 찍어야 하는 중요한 타이밍을 놓쳐서요"라고 웃으며 대답했다. 추기경님은 나이든 수녀의 재롱에 '허허' 웃으시며 다시 강복을 주시고는 강복을 두 배로 받았으니 호스피스 일도 두 배로 잘하라는 유머도 잊지 않으셨다.
 지난 2월 20일 용인 성직자 묘역 김 추기경님 묘소를 찾아 기도하며 우리를 위해 전구하고 계실 추기경님께 더 열심히 일할 것을 약속했다.
 추기경님이 베푸신 갑절의 강복 덕분에 센터는 작은 발걸음일지언정 꾸준히 발전해왔다. 아직 입원시설이 없어 안타깝기는 하지만 사랑나눔가족(후원자)의 정성어린 후원금과 성실한 자원봉사자들, 팀원들이 진행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고통 중에 있는 환우들과 그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부족한 우리를 도구로 선택하시어 나눔의 기쁨을 깨닫게 해주신 주님께 매 순간 깊은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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