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유자 수녀(성 바오로 가정호스피스센터장)
어느 날 모 병원 호스피스실 간호사 전화를 받았다. 간호사는 60살 위암 말기 환자가 어렵고 힘든 투병으로 심신이 지쳐 우울 증세를 보이는데 병원 오기를 꺼려 가족들도 힘든 상태라며 신자는 아니지만 수녀님 방문이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주님께 기도하고 의탁하며 자원봉사자와 함께 그 집을 방문했다. 방에 들어서니 이불을 싸안고 고통으로 몸부림치던 환자는 길게 늘어진 머리카락사이로 형형히 빛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문득 올리브 동산에서 기도하시던 예수님이 생각나 가까이 다가가니 환자는 내 무릎 위에 덥석 엎드렸다. 얼마 후 환자는 몸을 일으켜 앉더니 내게 말했다.
"수녀님 예수님이 지금 내 앞에 나타난다면 엉엉 울고 싶어요."
환자는 영적인 갈증을 느끼고 있는 듯 했다. 우리는 "형제님이 예수님을 보고 싶다면… 우리 함께 기도 할 수 있어요"라며 손을 잡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는 인생의 종착역에서 자신이 할 일은 사랑뿐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천천히 주님을 알아갔다. 그는 요셉으로 새로 태어났고 편안히 주님 품에 들었다.
하지만 홀로 남겨진 아내는 가족들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병원 치료를 거부하고 처절하게 고통을 견뎠던 남편을 생각하며 괴로워했다. 상실의 아픔을 다 보듬어줄 수는 없었지만 슬픔을 나누고 싶은 진심이 그 부인에게 위로가 되었나보다. 그 후 남편이 주님 곁에 있다는 확신으로 아내도 세례를 받았고 지금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성 바오로 가정호스피스센터에서는 환자와 가족들이 이별이 주는 참 의미를 깨달아 떠나는 이와 보내는 이 모두에게 주어진 사랑을 후회없이 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리고 사별 가족이 스스로 힘을 내 추스르고 일어설 때까지 방문, 전화, 전자우편 등으로 상담을 진행하고 사별가족 지지모임을 통해 그들의 슬픔 여정에 함께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또 사별가족을 위한 정기적 해바라기 모임을 통해 상실의 슬픔과 고통을 겪는 가족들이 성숙한 새로운 삶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 모임의 문은 어느 가족에게나 활짝 열어 두고 있다.
매일이 그렇듯 호스피스 대상자와 함께 한 오늘도 '묵상거리'가 가까이서 손짓을 한다. 죽음으로 누군가를 잃었을 때, 고통스러운 슬픔의 과정은 당신을 변화시켜 성숙한 삶으로 초대한다는 사실과 상실은 소중한 것을 잃게 했지만 더 값진 것을 선물로 준다는 것을 띄워주면서 호스피스 현장은 우리에게 생생한 가치를 쏟아 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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