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직 현장

총리님, 한 글자만 쓰셔야 합니다

namsarang 2010. 10. 1. 22:09

[사도직 현장에서]

 

총리님, 한 글자만 쓰셔야 합니다


                                                                                                              송향숙 수녀(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사회복지법인 위캔 위캔센터장)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위캔센터는 장애 중에서도 취업이 가장 어려운 지적 장애인들에게 일할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장애인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장애인 직업재활시설이다. 말하자면 쿠키를 만들기 위해 장애인을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을 고용하기 위해 쿠키를 만드는 그런 곳이다.

 위캔은 직원 20명, 지적 장애 근로인 40명, 공익요원 10여 명으로 구성돼 있다. 머리로만 알고 있던 지적장애인들과 함께 사는 것은 난감하고 버거울 때도 있지만, 때때로 지적 장애인만이 지니고 있는 순수함과 단순함으로 사람들을 웃게도 하고 기쁘게도 한다.

 지적 장애는 다른 장애와 달리 인지기능이 부족하기에 동그란 성형틀을 이용해 쿠키를 찍어내는 단순한 기능이라도 3개월에서 6개월 정도 반복 훈련을 해야만 상품성 있는 쿠키를 만드는 작업이 가능하다. 그러나 일단 학습된 것은 조금도 변형하지 않고 배운 대로 정확하게 실행하는 철저함과 우직함이 있다.

 위캔은 직업재활시설인 동시에 사회적 기업의 대표적 모델로 많은 방문객이 찾아오는 곳이기도 하다. 2009년에는 한승수 당시 국무총리께서 위캔을 방문하셨다. 그분은 지적 장애 근로인들을 만나신 후 쿠키 제작 공정에 직접 참여하셨다.

 반죽 공정은 여러 공정 중에서 쿠키 맛과 품질을 좌우하는 가장 어려우면서도 중요한 일이기에 책임 의식과 사명감을 불어 넣기 위해 반죽한 사람은 반죽에 반죽 일자와 본인의 이니셜 한 글자를 적도록 가르쳤다. 총리께서는 반죽을 완성하신 후 주변에 서 있던 사람들 권유에 따라 반죽 일자와 이름을 적으셨다. 총리는 '2009년 X월 X일 한 승 수'라고 날짜 외에 세 글자를 적었다.

 아니나 다를까, 옆에서 지켜보던 장애 근로인 한 사람이 매우 진지하면서도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한 총리에게 다가가 말했다. "헉?! 저기요…. 세 글자를 쓰면 안 돼요. 한 글자만 쓰셔야 합니다."

 세 글자씩이나 되는 이름 석 자를 적는다는 것은, 배우고 익힌 내용에서 조금이라도 다른 것은 받아들이지 못하는 장애 근로인에게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었다. 이 장애 근로인은 총리께서 시설을 둘러보고 돌아가기 위해 승용차에 오를 때까지 '한 글자만 써야 한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이 일화가 떠오를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어린 아이의 순수한 모습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이런 순수함이 용기를 내게 하는 힘은 아닐까. 상대방이나 상황에 따라, 혹은 앞뒤를 가리면서 정작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접고 감추고 사는 나는 얼마나 복잡한 사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