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장
면장을 보고 있는 김광옥. 그는 불같은 성격으로 이웃들이 무서워하였으나 50살 쯤 천주교 신앙에 귀의한 후 이전의 성격을 모두 고쳤다. 충청도 예산 여사울 중인 집안에서 태어난 김광옥(안드레아, ?~1801)은 오랫동안 그 지방 면장(面長)을 지냈다. 그는 50살쯤 됐을 때 같은 여사울에 살던 이존창(루도비코 곤자가)에게서 교리를 배워 입교했다.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김광옥은 자신이 입교시킨 친척 김정득(베드로)과 함께 성물과 서적만을 지닌 채 숨어 지내다가 함께 체포됐으며, 마침내는 한양으로 압송돼 8월 21일 사형선고를 받았다. '고향인 예산과 대흥으로 압송해 참수하라'는 명령이었다. 충청도로 내려온 그들은 헤어질 시간이 되자 서로 "내일 정오, 천국에서 다시 만나세"하고 작별 인사를 했다.
이튿날 들것에 실려 예산 형장으로 간 김광옥은 무릎을 꿇고 큰 소리로 기도를 마친 다음 목침을 가져다 스스로 그 위에 자신의 머리를 뉘였다. 그리고 두 번째 칼날에 목숨을 바쳤으니, 이때가 1801년 8월 25일(음력 7월 17일)로, 당시 그의 나이는 60살 가량이었다. 1816년 대구에서 순교한 김희성(프란치스코)이 그의 아들이다.
그림 탁희성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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