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가집에서 잡혀(제82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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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탁희성 화백 |
최여겸(마티아)이 신유박해 때 충청도 한산의 처가에 피신해 있다가 포졸들에게 붙잡히고 있다. 전라도 무장 양반 집안에서 태어난 최여겸(마티아, 1763~1801)은 일찍이 윤지충(바오로)에게서 천주교 교리를 배웠다. 결혼한 뒤에는 내포 사도 이존창(루도비코 곤자가)을 만나 다시 교리를 배우고 아주 열심한 신자가 됐다.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최여겸은 일단 충청도 한산에 있는 처가로 피신했다. 이때 무장에서는 그가 입교시킨 신자들을 포함해 수많은 신자들이 체포되면서 그의 이름이 드러났다. 최여겸은 4월 13일 한산에서 체포된 후 감사의 명에 따라 무장으로 이송됐다. 최여겸은 무장에서 문초를 받은 후 굴하지 않자 전주 감영으로 이송됐으며, 전주 감영에서는 열심한 신자 한정흠(스타니슬라오)과 김천애(안드레아)를 만났다.
최여겸과 동료들은 그 후 한양으로 압송돼 포도청과 형조에서 문초를 받은 후 마침내 고향에서 사형에 처한다는 선고를 받았다. 최여겸은 고향 무장으로 이송돼 그곳 개갑장터(현 전북 고창군 공음면 갑촌)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했다. 1801년 8월 27일(음력 7월 19일)로, 그의 나이 38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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