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해설

야고보서 해설

namsarang 2010. 4. 22. 19:57

 

야고보서는 어떤 책인가요?

 

 

야고보서란 이름은?

야고보서는 공동(catholic)서간에 속하는 첫번째 편지입니다. 13개의 바오로 서간은 모두 이 편지를 받는 개인이나 교회 앞으로 편지를 띄우지만, 공동서간은 이 편지를 받는 지역이 명기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만 누가 편지를 띄우는지만 첫머리에 밝혀져 있지요. “하느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가 흩어져 사는 열두 지파에게 인사를 드립니다”(야고 1,1)는 내용에 따라 ‘야고보서’란 현재의 책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어요.

 

누가 썼나요?

야고보서에 대해 명확한 언급을 한 최초의 교부인 오리게네스는 이 서간의 저자를 단순히 ‘야고보’ 또는 ‘사도 야고보’라고 밝히고 있어요. 유세비우스는 이 야고보가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사도 15,13; 21,18)며 “주님의 형제”(갈라 1,19)로 여겼지요. “하느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야고 1,1)이라고 야고보를 간략하게 소개하는 것이며, “자유를 주는 완전한 법”(야고 1,25)을 지키라는 권유가 유다교의 율법을 철저히 지켰던 야고보(사도 15,13-21; 21,18-24)를 연상케 했기 때문이죠. 나아가 사도 15장에 나오는 야고보의 설교와 문체가 서로 비슷할 뿐만 아니라, 팔레스티나의 기후현상을 정확히 반영하는 “가을비와 봄비”(야고 5,7)라는 언급도 이런 추정을 가능하게 합니다.

 

그렇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아요. 서간에 쓰인 그리스어 문체가 갈릴래아 농부 출신치고는 너무 유창할 뿐 아니라, 주님의 형제로 오래도록 생활해 온 것에 비해서는 예수 자신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으며, ‘율법의 효력’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으면서 믿음과 행동을 다루고 있음이 의아하다는 점을 들어, 익명의 저자가 야고보의 이름을 빌어 집필했을 거라고 보는 학자들도 있어요.

 

언제 쓰여졌나요?

야고보서의 집필연대는 저자가 누구인지에 따라서 크게 달라져요. 주님의 형제인 야고보가 썼다면 야고보가 순교하기 전에는 집필되었을 거에요. 야고보는 페스도와 알비누스가 유다 총독으로 이취임하던 62년 또는 베스파시안 황제가 팔레스티나를 점령해 들어오던 67년에 숨졌을 것으로 추정되어요. 반면에 야고보서가 차명서한이라면, 1세기 말이나 2세기 초에 집필되었을 거에요.

 

 왜 썼나요?

교회는 지역상으로도 도시와 농촌에 걸쳐 있고, 직업상으로도 아주 다양한 사람들이 그 안에 모여들게 됩니다. 따라서 사람들의 생김새나 차림새를 보고 박대하거나, 선행은 뒷전에 밀쳐놓은 채 믿음만이 최고라는 환상을 갖기 쉽지요. 이에 야고보는 진정 하느님의 자녀라면 가난한 사람들을 따뜻하게 맞이해야 하며, 주님 앞에서 겸손하고 정결한 마음으로 이웃을 위해 사랑을 실천해야 함을 일러주고자 이 서간을 집필했어요.

 

 <새김과 나눔>

야고보는 행동으로 드러나는 믿음을 강조합니다. 나는 내 주변의 신앙인들이 어떤 행동을 할 때 참 신앙인임을 느꼈는지 함께 이야기해 봅시다.

 

 말씀대로 실천하는 사람(야고 1,1-27)

 

  말씀을 듣고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어떤 사람과 같습니까?(1,23)

 

 여러 가지 시련을 당할 때 인내력을 한껏 발휘하면 완전하고도 원만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권유하면서, 지혜가 부족한 사람이 있으면 하느님께 채워주시기를 청하라고 당부해요. 이처럼 살아가면서 부족한 면을 느낄 때마다 자신을 탓하기보다는 주님께서 채워주시기를 청한다면 조금더 맑고 밝게 생활하실 수 있을 거에요.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 믿음은(야고 2,1-26)

 

  가난한 사람을 택하셔서 믿음을 부요하게 하시는 분은 누구십니까(2,5)

 

 옷이 날개라는 우리 나라 속담이 있지요. 조금 화려하게 입으면 돋보이고, 누추한 옷을 입으면 초라해 보이게 마련인데요. 그리스도인은 그런 가치기준으로 사람들을 차별대우해서는 안돼요. 입으로만 선행을 말할 뿐 실제 행동으로는 반영되지 않는 믿음도 곤란하겠지요.

 

 평화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은(야고 3,1-18)

 

  온 몸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완전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3,2)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은 온 몸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완전한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말을 함부로 해서 이웃들에게 상처를 입히는 실수를 곧잘 범하지요. 말의 홍수라 하는 이 시대에도 침묵의 가치를 깨닫고 침묵 속에서 들려오는 주님의 소리를 헤아려 듣는 지혜가 필요하답니다.

 

 주님 앞에서 스스로 낮추십시오(야고 4,1-17)

 

  사람이 제가 마땅히 해야 할 착한 일을 알면서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4,17)

 

 분쟁과 갈등은 욕심에서 비롯된다면서, 우리가 주님께 청하는 것이 무엇인지 헤아려 보도록 촉구해요. 만일 욕정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주님께서 허락하실 리 없고, 이웃들과도 불필요한 다툼을 하게 될 뿐이에요. 그러니 이웃을 심판하거나 헛된 장담을 하지 않으면서 주님 안에서 하루하루 성실히 살아가야겠지요.

 

 믿고 구하는 기도는(야고 5,1-20)

 

  심판을 받지 않으려거든 어떻게 해야 합니까?(5,9)

 

 농부는 땅이 귀중한 소출을 낼 때까지 끈기있게 비를 기다립니다. 이처럼 신앙인도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참고 기다리며, 다른 사람을 탓하거나 쓸데없는 맹세를 하지 말라고 당부해요. 상대방을 내 구원의 동반자로 삼아 서로 죄를 고백하고 서로 남을 위하여 기도하면 모두 온전해질 것이라고 일러주어요.

 

 <새김과 나눔>

야고보는 믿고 구하는 기도는 병을 낫게 해준다고 이야기합니다. 나는 어느 때 내 기도가 응답되는 체험을 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