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모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우리는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복음으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주님의 기적에 관한 말씀을 듣습니다.
"날이 저물기 시작하자, 열두 제자가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군중을 돌려보내시어, 주변 마을이나 촌락으로 가서 잠자리와 음식을 구하게 하십시오. 우리가 있는 이곳은 황량한 곳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하시니, 제자들은 '저희가 가서 이 모든 백성을 위하여 양식을 사 오지 않는 한 저희에게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습니다'하고 말하였다"(루카 9,12-13).
모든 상황을 보건대(장정만도 오천 명가량 됐다), 제자들은 군중을 돌려보내는 편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마음은 이와는 다릅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요청하십니다. 앞으로 일어날 놀라운 기적의 초석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으니 열두 광주리나 되었다"(루카 9,17).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시는 그 마음을 깨닫는 데 있습니다. 이것은 양의 문제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을 위한 열린 마음과 주님을 향한 굳은 신뢰를 가지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의 의지가 주님 뜻과 일치할 때, 비로소 주님의 거룩한 영이 놀라운 변화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이것은 주님께서 육신의 배고픔을 빵으로 채워 주셨듯이 이제 순례 여정 속에 있는 교회 공동체의 영적 배고픔을 당신의 성체와 성혈로 채워주신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사실 우리 마음 한 구석에는 그 어떤 것으로도 채워질 수 없는 배고픔이 있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채우실 수 있는 영적 배고픔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주님의 성체와 성혈을 받아 모시는 것은 그분의 마음과 거룩한 영을 받아들여 신적인 생명에 참여하고 일치하기 위한 것입니다. 교황 바오로 6세께서 성체성사를 언어에 비유해 가르쳐 주신 말씀이 기억납니다.
"하나의 울림이 소리가 되고, 소리가 말(言)이 되고, 말(言)이 생각이 되고, 생각이 진리가 되듯이, 성체성사에서 드러나는 빵의 표지도 빵이라는 본질에서 시작해서 그리스도의 신비에로 변화돼 갑니다."
이 말씀은 성체성사의 신비뿐 아니라, 신앙인이 생명의 빵으로 어떻게 변화돼야 하는지 깨우쳐 준다고 봅니다. 같은 빵을 나누고 같은 잔에서 포도주를 나누는 이 단순한 행위에는 그저 배고픔을 채운다는 의미만 담겨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가족이 함께 모여 음식을 먹는 행위가 단순히 육신의 배고픔을 없애기 위한 행위만 담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음식을 함께 먹을 때 거기에는 가족 구성원이 함께 하고 대화가 오고 가며 삶의 희로애락이 드러나는 만남의 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음식을 먹을 뿐 아니라 서로의 말을 먹고, 삶의 현장에서 일어났던 서로의 표정을 먹고, 서로의 마음을 먹고, 그 음식을 준비한 사람의 사랑을 먹게 되는 친교의 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함께 걷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동반자'(Companion)라는 단어는 함께(Com)라는 단어와 빵(Panis)이라는 단어가 합쳐져 빵(밥)을 함께 먹는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을 마음 안에 받아 모신다는 의미는 생명을 향한 창조적 여정을 전제합니다. 우리 내면 저 깊은 곳에 계시는 주님 현존이 새로운 인간으로 변모되도록 우리를 이끄신다는 뜻입니다. 이에 대한 응답은 빵이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사실을 믿는다는 차원을 넘어서 바로 그리스도처럼 살아가겠다는 응답인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빵이 되셨다면 우리도 이웃을 위해 빵이 돼야 합니다.
우리가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실 때, 빵과 포도주는 우리 안에 녹아 스며듭니다. 동화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도 우리 안에 스며들어 주님과 우리를 일치시켜 줍니다. 그리스도의 사람, 곧 그리스도의 혈육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몸과 피를 영하는 행위는 살아계신 그분의 성령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성령을 통해 주님의 생애와 말씀을 내적으로 되새기며 그분께서 원하시는 뜻과 하나가 되기를 지향하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 내면에는 주님이 주시는 깨달음의 겨자씨가 발아하게 되고 영원한 생명을 향한 여정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삶처럼, 자신을 나눠주는 행동과 실천이 우리 안에 자리 잡은 영적 배고픔을 채워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이 주시는 성체성사의 은총과 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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