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모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삼위일체란 무엇일까요? 삼위는 한 하느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이는 신앙에 관한 가장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교리입니다. 하느님의 단일성은 삼위로 이뤄져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세 위격은 서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삼위는 신성을 나눠 가지는 것이 아니라, 각 위격이 저마다 완전한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의 단일성은 나눠지지 않는 것이므로, 세 위격의 실제적 구분은 오로지 위격이 다른 위격과 갖고 있는 관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신비를 굳이 창조물에 비유해 설명하자면, 흔히 태양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불꽃같은 태양의 본체는 하나이지만, 빛과 열로 구성돼 있어 그 관계를 설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앙인들이 삼위일체 신비를 바라볼 때 전제해야 할 조건은 그것이 하느님께 유보된 신앙의 신비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는 하느님이 계시하시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신비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삼위일체는 하느님의 신비를 다 알아듣고 추론한 용어가 아닙니다. 이것은 하느님이 세 분인데 신비롭게 하나라는 모순된 말을 믿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성부, 성자, 성령이라는 세 분의 이름은 성자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삶을 구체적으로 보고 배우며, 성령이 우리를 변화시켜 우리 안에 주님의 삶이 나타나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삼위일체는 우리 시대가 필요로 하는 신비이며 성자도 성령도 모두 하느님을 향한 우리 여정을 밝히고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신앙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습니다.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신앙이 삼위일체에 근거한다는 표지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아버지 하느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성령의 신비로운 삼위가 다채로우면서도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봅니다.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께서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라고 내가 말하였다."(요한 16,13-15)
결국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진리는 하느님의 진리와 분리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 진리를 성령이 증언하시고 이제 신앙인들이 깨닫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삼위일체의 신비 속에서 이 진리가 신앙 공동체에 계시됩니다. 이 진리는 성부, 성자, 성령이신 하느님께서 바로 사랑 안에 일치를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삼위일체 신비에 대한 신앙의 핵심은 아버지 하느님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당신의 성령 안에서 사랑으로 계시하시고 구원하시며 우리들 가운데에 현존 하신다는 것을 믿는 데에 있습니다. 하느님은 저 하늘 위 높은 곳에 홀로 앉아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열어 보이시며, 우리 가까이 내려오시기를 바라시는 분입니다. 당신의 자비와 사랑을 고백하시는 분, 그렇게 끊임없이 인간과 사랑의 관계를 맺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사랑으로 존재하시는 것입니다.
사랑은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은 혼자서만 살 수 없습니다. 이웃과의 관계가 자신의 자아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서로를 묶어주는 사랑이 지금의 나를 형성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깨달은 진리들, 자신이 맺은 사랑의 열매들을 자신의 삶 속에서만 찾으려 한다면 그것은 이기심과 교만에서 우러나온 것일 수 있습니다. 오히려 그런 생각과 열매들을 누군가의 삶에서도 발견하고 찾아낼 수 있다면, 더 기쁜 일일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사랑으로 일치된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거룩한 삼위일체가 내재한 사랑의 신비는 모든 믿음의 뿌리이며, 신앙을 비추는 빛입니다. 우리가 미워하는 누군가를 마음에 받아들여 모든 갈등과 오해가 사라지는 순간이 바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빛이 우리를 비추는 순간입니다. 하느님의 세 위격은 서로 사랑 안에서 일치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역사는 바로 성부, 성자, 성령이신 참되고 유일한 하느님께서 당신을 계시하시고, 죄에서 돌아서는 인간들과 화해하시며, 그들을 당신과 결합시키시기 위한 여정과 관계의 역사인 것입니다. 손을 붙잡아주는 누군가와 함께할 수 있다면, 갈 길이 험하고 힘든 어떤 여정도 끝까지 갈 수 있다고들 합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이 바로 우리 삶의 동행자이십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영원한 생명이신 하느님과 완전한 일치를 이루는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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