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모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주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셨다는 승천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사실 승천 사건은 하느님 안에 감춰진 신비입니다.
이 신비를 알기 위해 주님께서 하늘로 어떻게 올라가셨는지, 또는 하늘 어디에 계신지를 찾으려 한다면 그것은 무익한 일일 것입니다. 승천이란 주님께서 보이지 않지만 우리와 함께 현존하신다는 뜻으로 알아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옛 성현들은 하늘을 두고 시작과 끝이 없고, 위아래와 사방이 없어서 비고 또 비어있으나, 품지 아니한 것이 없다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아마 하늘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기에, 하늘을 볼 수 없는 곳이 세상에 어디에도 없다는 뜻일 것입니다.
하늘이 이런 의미를 갖고 있다면, 주님께서 하늘로 승천하셨다는 의미는 우리가 있는 곳 어디에나 주님께서 우리를 바라보고 계시며 현존하신다는 뜻일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복잡한 일상에 쫓기며 제대로 하늘을 올려다보는 여유를 잃고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일에만 급급해 하늘을 통해 모든 것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고통을 당하면 고통만 볼 뿐 고통을 통해 주님께서 내게 주시는 은총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남에게 상처를 받으면 상처를 준 사람만 미워할 뿐 상처를 통해 전해오는 주님 은총을 보지 못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슬픔에 잠기고, 그렇게 실망하며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고통당하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주님을 바라보면서도, 그 고통과 십자가 여정이 내게 던지는 은총과 행복은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고통에서, 십자가에서 멀리 달아나려고만 하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오늘 복음은 승천이 우리 삶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베타니아 근처까지 데리고 나가신 다음, 손을 드시어 그들에게 강복하셨다. 이렇게 강복하시며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셨다. 그들은 예수님께 경배하고 나서 크게 기뻐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줄곧 성전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며 지냈다"(루카 24,50-53).
주님께서 승천하셨다는 의미는 우리 곁에서 영영 사라지신 것이 아니라, 영광스러운 변모처럼, 감춰졌던 거룩한 하느님 신성이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슬퍼하기보다는 기뻐했습니다. 주님은 사도들을 축복하셨고 이제 그들은 매일 기쁨에 넘쳐 성전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며 지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 현존은 당신의 거룩한 변모처럼, 우리를 변화시켜 주는 은총을 내려주십니다. 주님 승천은 우리의 선택을 요구합니다. 이 놀라운 신비를 믿고 따르느냐, 따르지 않는냐 하는 문제입니다.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 너희를 떠나 승천하신 저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사도 1,9-11).
이 선택은 늘 우리 인생에 질문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요청되는 것은 믿음과 실천입니다. 승천하신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세상으로 가라고 명령하십니다. 일상으로 들어가라는 말씀입니다. 사랑과 증오, 용서와 단죄, 위로와 상처, 이런 감정이 얽혀있는 세상에서 어떤 삶이 증인의 삶인지 선택하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십자가를 내려놓고 하늘만 쳐다보며 과거 향수에 젖어 살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십자가는 벗어 던져버리고 싶은 무거운 짐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선포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여러분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시어 여러분이 그분을 알게 되고, 여러분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어, 그분의 부르심으로 여러분이 지니게 된 희망이 어떠한 것인지, 성도들 사이에서 받게 될 그분 상속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 여러분이 알게 되기를 빕니다"(에페 1,17-18). 우리는 주님이 주시는 그 엄청나고 강한 은총의 힘을 통해 삶이 변화되도록 애써야 할 것입니다. 거창한 말보다 작은 행동이 더 호소력이 있습니다. 이것이 표징의 삶입니다. 불화와 무관심으로 상처받고 슬퍼하는 가정에서, 병으로 고통 받는 병실에서, 가난한 형제들의 생활고에서, 이해할 수 없는 어려움과 고통을 겪는 곳에서, 우리는 승천하시는 주님의 증인 역할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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