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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고속도 완공 40주년에 떠오른 생각들

namsarang 2010. 7. 7. 23:23

[사설]

경부고속도 완공 40주년에 떠오른 생각들

 
1970년 7월7일 경부고속도로가 최종 개통됐다. 꼭 40년 전 일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당시 대구공설운동장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경부고속도로는 조국 근대화의 상징적 도로이며 남북통일과 직결되는 도로"라며, '민족적인 대(大)예술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그가 '민족'과 '조국'까지 끌어들여 큰 의미를 부여했던 것은 그 시대에 상상하기 힘들었던 거대 국책(國策)사업을 완성했다는 감격 때문이었다.

경부고속도로는 2년5개월이라는 단기간 내 연인원 900만명을 동원해 완성됐다. 한해 국가 예산의 4분지 1을 몰아 투입했고, 428㎞ 구간 대부분의 공사를 국내 건설회사와 우리 군(軍)의 토목 기술만으로 이루어냈다. 규모 면에서만 '단군 이래 최대'였던 것이 아니라, 한 시대를 훌쩍 뛰어넘어 새로운 시대를 연 프로젝트였다. 경부고속도로를 계기로 일본의 식민지 시대에 건설되었던 철도와 국도(國道)에 얹혀 있던 물류 산업이 고속도로를 통해 급성장했고, 이를 디딤돌로 해서 서울~부산을 잇는 성장축(軸)을 중심으로 수원-대구-구미-울산-포항-마산을 연결하는 산업화 벨트가 만들어졌다. 1인당 국민 소득 고작 255달러(한국은행 통계), 국민 총생산(GDP) 81억달러에 불과하던 경제규모는 7년 후 4배 이상 고속 팽창했다. 김정렴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은 "경부고속도로가 없었다면 70년대, 80년대 고도성장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경부고속도로는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의식 혁명(Can-do spirit)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그때만 해도 일제 지배, 6·25전쟁, 이승만 정권의 부정부패, 쿠데타 등 숱한 굴곡을 거치며 민족적 역량에 대한 회의론이 우리 사회에 만연하던 시대였다. 경부고속도로 구상에도 "부유층의 유람로를 만드느냐"는 여론의 비판이 몰아쳤고, 야당 지도자들은 "서울-강릉고속도로부터 만들라"며 견제를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손으로 거대 국책사업을 성공시킴으로써 세대를 거쳐 누적된 좌절감을 씻어내고 배를 굶주리던 가난으로부터 탈출할 교두보를 확보했다.

그러나 40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과연 시대 변혁을 몰고 왔던 그때의 도전 정신을 유지하고 있는가. 인천공항 건설을 내세울 수 있을 뿐, 세종시 수정안의 좌절, 대운하 계획 포기, 4대강 사업 논란, 기업도시-혁신도시 지지부진 등 최근 10년 사이 주요 국책사업은 잇달아 실패하거나 국민적 호응을 받지 못했다. 거대 건축물이나 신도시 건설에 집착하는 국책사업 시대가 종말을 고(告)하는 신호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국책사업은 건강, 교육, 노후(老後)보장, 레저를 포함 삶의 질(質)을 높이고 편안함와 행복감을 충족시켜 줄 새로운 개념의 사업으로 바꿀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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