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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의 어머니, 당신을 위하여…

namsarang 2010. 7. 6. 21:50

[사람과 이야기]

천안함의 어머니, 당신을 위하여…

 

 

"그 나라사랑에 스스로가 부끄러웠습니다"
익명의 中企직원들 "천안함 결코 잊지 않겠다" 장대비 속 부여로 찾아와
윤청자씨에 826만원 보내… 윤씨는 다시 2함대에 기부
"고귀한 마음에 부응하고 싶었습니다"

천안함 폭침으로 아들을 잃고도 보상금 1억원을 정부에 내놓은 고(故) 민평기 상사 어머니 윤청자(67)씨에게 중소기업 직원들이 소중한 성금을 모아 전달했다. 직원들은 "큰 슬픔에도 나라사랑의 본보기를 보여줘 우리가 부끄러웠다"며 성금과 함께 홍삼 영양제 한 상자를 보냈다.

이들이 윤씨가 사는 충남 부여 농가를 찾은 건 천안함 폭침 100일을 하루 앞둔 지난 2일이었다. 장대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그날 윤씨 농가 앞에 택시 한대가 멈춰 섰다. 한 여성이 내려 윤씨를 찾았다. 윤씨는 서울아산병원이 천안함 유가족들에게 무료로 해준 건강검진 결과를 보러 서울에 가고 없었다. 윤씨 둘째 아들이 "어머니는 안 계시다"고 하자 낯선 손님은 "어머니에게 꼭 좀 전해달라"며 비닐봉지 하나를 건네고 서둘러 떠났다.

윤청자씨(사진 왼쪽)와 편지.

둘째 아들은 으레 어머니를 찾아오는 손님들처럼 죽이나 음료수를 전해주려는 것으로 생각하고 무심코 비닐봉지를 받아 집으로 들어갔다. 윤씨도 아들로부터 "누가 찾아왔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그냥 지인(知人)으로만 여겼다. 그날 저녁 둘째 아들이 봉지를 열자 뜻밖에 홍삼 영양제 상자와 함께 현금 뭉치, 그리고 편지가 나왔다. 그날 저녁 전화 한 통이 걸려와 비닐봉지가 어머니에게 전달됐는지 물었다.

윤씨 아들은 "어머니가 아직 오지 않으셔서 전달하지 못했다. 돈을 누가 보냈나. 돈을 이렇게 보내면 어떻게 하느냐"고 되물었다. 수화기 너머에서는 "밝힐 수 없다. 우리는 심부름을 해서 알지 못한다"며 "꼭 어머니께 전해달라"는 말을 하곤 전화를 끊었다.

윤씨가 비닐봉지에 싸인 물건을 확인한 건 하루 뒤였다. 3일 윤씨는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천안함 100일 추모식'에 참석한 뒤 부여 집으로 돌아가서야 낯선 손님이 놓고 간 봉지를 열어봤다. 봉지 안에는 포장지에 싸인 돈 826만8000원과 정성껏 손으로 쓴 편지 3장이 들어 있었다.

윤씨는 서둘러 봉지에 함께 들어있던 편지를 읽었다. 윤씨 눈가에선 이젠 마른 줄 알았던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윤씨는 "너무 고맙고, 죄송하고, 황송해서 울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편지에서 '경기도에서 조그만 중소기업 회사에 근무하는 직원들'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이들은 "액수도 많지 않고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이 부끄러워 회사 이름을 말씀드리지 못하는 점을 너그럽게 이해해 주십시오"라고 썼다.

그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 발생한 지 벌써 석달이 흘렀다"며 "저희 모두 울었고, 우리 국민 모두도 울었습니다"고 했다. 그리고 "천인공노할 북한의 만행에 대해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이 앞장서서 규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회는 사건 발생 95일이 지나서야 반 쪽짜리 결의안을 가까스로 통과시키는 것을 보고 정말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라고 했다. 이어 "수많은 국민들이 우리의 현실에 대해서 비겁함과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던 시기에 오히려 큰 슬픔을 당하신 윤 여사님께서 몸소 나라 사랑의 본보기를 보여주신 것은 저희들을 더욱 작고 부끄럽게 하고 있습니다"라고 썼다. 그들은 "우리의 현실이 너무도 개탄스럽고 울분을 금할 길이 없어 윤 여사님께서 보여주신 고귀한 마음에 어떤 형태로든 조금이나마 부응해 드리고자 직원 모두가 자발적으로 여사님께 보내드리는 성금을 모았습니다"고 했다.

윤씨는 지난달 14일 청와대에서 "더 이상 고귀한 희생이 없도록 무기를 만드는 데 써달라"며 받은 보상금에서 1억원을 떼어 내놓았다. 지난달 17일에는 유엔 안보리 이사국들에 천안함 사태 재조사를 촉구하는 서한을 보낸 참여연대를 찾아가 "근거 없는 의혹 제기를 중단하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중소기업 직원들은 그런 윤씨에 대한 고마움을 성금과 편지에 담아 보냈던 것이다. 편지는 "우리는 천안함 46명 용사들의 고귀한 희생을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글로 끝을 맺었다.

편지를 다 읽은 윤씨는 "고귀한 성금을 보내준 분들을 찾아 인사를 드려야 하는데 방법이 없다"며 본사에 연락해 왔다. 윤씨는 5일 본지 기자와 만나 "하루도 고귀한 돈을 집에 둘 수가 없다"며 사연을 전한 뒤 경기도 평택 해군 제2함대사령부를 찾아갔다. 그러곤 '그분들'이 보내준 성금도 국가 안보를 위해 써달라고 맡겼다. 윤씨는 성금전달식 같은 모든 형식을 생략한 채 중소기업 직원들이 보내온 성금을 군부대에 건네고 집으로 돌아갔다. 윤씨는 그게 '그분들'에게 인사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