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만 주교(서울대교구 서서울지역 교구장 대리)
요한 묵시록 12장을 보면 '여인과 용'이라는 제목으로 성모님과 관련된 내용이 나온다. 창세기 3장 15절에서도 성모님을 상징하는 여인이 뱀과 싸운다.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성경 첫 권과 마지막 권에 성모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우연만으로 보기는 어렵다. 묵시록 12장은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 때 독서로 읽혀지는 구절이다.
묵시록 12장에 나오는 여인과 용의 대결은 교회가 악과 맞서 싸우는 것의 묵시문학적 표현이다. 여인은 교회이자 하느님 백성이다. 용과 싸우는 여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고통에 함께하는, 교회의 모델이 되는 성모 마리아다.
지금까지 구약과 신약에 나타난 성모 마리아를 살펴봤다. 결론적으로 성경에 나오는 성모 마리아는 다음과 같은 분이다.
성모님은 먼저 혈연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다. 예수님이 하느님인 동시에 인간인 것은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았기 때문이다. 성모님은 육체적으로뿐 아니라 믿음으로도 예수님의 어머니다. 성모님은 예수님을 낳은 것은 물론 하느님을 철저하게 믿고 따랐다.
성모님이 복된 이유는 엘리사벳 성녀 말씀처럼 성모님께서 하느님 말씀이 이뤄지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천사에게 '저는 주님의 종이니 당신 뜻대로 이뤄주소서'라며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긴 신앙이 성모님을 공경하는 첫 번째 이유다. 우리가 본받아야 할 것은 바로 이 믿음이다.
성모님이 예수님을 동정으로 잉태했다는 사실은 인간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이는 계시에 속하는 것이다. 인간에겐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 불가능한 것은 없다는 하느님의 전능성을 드러내는 가장 큰 표징이다.
성경이 묘사하는 성모님 모습은 다양하다. 후대에 쓰인 성경일수록 성모님에 대한 언급이 많다. 초기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데 예수님 부활을 목격한 제자들이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후기로 갈수록 예수님의 어린 시절 증언자로서 성모님 비중이 커진다. 성모님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선포하는 데 무관한 분이 아니셨다. 또 예수님 공생활에 방해가 되기를 원치 않으셨다. 예수님이 공생활을 하시는 동안 항상 뒤에서 예수님을 지켜보셨다.
성경에 나타난 성모님은 교회의 모범이 되는 모델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인류의 빛」(교회헌장)은 8장에서 성모 마리아를 다루며, 교회는 성모님이 걸어 가셨던 길을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황청이 세계 주교들에게 공의회에서 무엇을 다루면 좋은지 물었을 때 절반 이상이 성모님을 다루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공의회는 성모님을 예수님과 교회와 분리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이 헌장에서 다룬 것이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공의회 문헌으로 '마리아 헌장'이 나올 수도 있었다.
성경은 마리아를 주님의 어머니, 그리스도의 어머니 등 어머니로 표현했다. 문제는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표현이다. 초창기 교회 때 성모님을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논란이 생겼고, 교회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에페소공의회(431년)를 열었다. 성모님을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하면 성모님은 인간이 아니라 하느님을 낳은 여신(女神)이 되기 때문이다. 에페소공의회는 예수님이 하느님인지 아닌지를 논의했고, 예수님은 곧 하느님이라고 결론지었다. 성모님은 여신이 아니고 하느님인 예수님을 낳은 분이기 때문에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불러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다.
성경에서 성모님은 은총이 가득하신 분, 하느님 사랑을 충만하게 받은 분이다. 성모님의 원죄 없는 잉태, 승천 등은 성모님이 은총을 가득 받은 분이기에 선포될 수 있는 교리다. 성모송은 가브리엘 천사와 엘리사벳 성녀가 성모님께 한 말을 합한 것이다. 성경에 분명하게 나오는 내용이다. 따라서 성모송에는 개신교가 이의를 제기할 대목이 없다.
성모님에 대한 교회 가르침은 성경을 바탕으로 하는 것으로, 가톨릭이 성경과 상관없이 별도로 만든 게 아니다. 성경에 나오는 진술들은 성모님께서 초기 교회 공동체부터 공경 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드러낸다. 성모님 공경은 이처럼 성경에 분명한 근거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가톨릭은 개신교와 논쟁에서 떳떳하게 대응할 수 있다. 정리=남정률 기자 / njyul@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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