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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형 공장이 구로공단을 부활시켰다

namsarang 2010. 7. 22. 23:02

[기고]

아파트형 공장이 구로공단을 부활시켰다

박용규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구로공업단지가 첨단 디지털단지로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구로공단은 1960년대부터 섬유·봉제·가발·전기 등 경공업을 중심으로 수출 한국을 이끈 대표적 공업단지였다. 그러나 이제 첨단 정보기술(IT) 인프라를 구축한 테크노산업 단지로 다시 태어났다.

이곳의 가장 큰 무기는 '작지만 강한' 강소(强小) IT벤처기업들이다. 디지털단지가 조성된지 11년 동안 매년 1000여개 기업들이 모여든 게 이미 1만개를 돌파했다.

극세사(極細絲)로 만든 섬유제품으로 세계 시장을 석권한 웰크론사, 3D 전자부품 검사장비 생산실적 세계 1위인 고영테크놀러지사…. 이들 업체를 포함한 작은 업체들이 세계 시장으로 뻗어나가기 위한 힘을 결집, 한국 경제의 새로운 심장 역할을 하고 있다. 수출액이 이미 2조원을 넘겼고, 연간 매출액도 10조원을 넘어섰다.

구로디지털단지가 이처럼 작지만 강한 IT벤처기업을 키워 'IT산업의 심장부'로 탈바꿈에 성공한 비결은 정부의 과감한 규제 완화 정책에 있었다. 구로공단은 1988년 전자제품 수출 호황을 마지막으로 다국적기업들이 빠져나가고, 국내 기업들도 사양산업인 섬유·봉제공장들을 폐쇄하면서 공동화(空洞化)·슬럼화됐다. 이 지역을 살리기 위해 시도한 게 바로 아파트형 공장이었다. 정부는 1996년 수도권에 공장 증설을 막던 수도권 공장 총량제에서 아파트형 공장을 제외시켰다. 공기업에만 허용하던 아파트형 공장 건설을 민간사업자에게도 풀었다. 제조업체만 입주를 허용하던 것을 지식·정보통신산업 같은 서비스 분야 업체에도 문호를 개방하도록 법을 바꾸었다.

그 결과, 아파트형 공장 건설 붐이 일어났다. 10여층 대형 건물에 기업들이 들어 와 사무실·연구소, 생산·조립 공장 등으로 이용할 공간을 마련했다. 건물 내에 은행·식당·편의점·사우나·문구점 등 각종 편의시설을 두어 24시간 근무할 여건도 갖춰 놓았다. 최근에는 호텔식 인테리어와 중앙보안관제시스템, 중소 회의실을 포함한 각종 비즈니스 시설을 제공한다. 한 나라 수도(首都)에 1만개 기업이 모여들게 한 것은 기적 같은 일이다. 누구도 감히 생각 못할 '도시 안의 산업도시'를 지은 것이다.

이렇게 되자 서울 테헤란로에 있던 벤처기업들도 이곳으로 몰려왔다. 벤처 거품이 꺼지면서 강남의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했던 기업들엔 새로운 기회의 땅이었다. 서울시도 공공자금에서 아파트형 공장 분양 대금의 70%까지 저리(低利)로 융자해 이들의 발길을 재촉했다. 취득·등록세와 재산세, 종합토지세 경감 등의 세제혜택도 이들을 불러 모았다. 이렇게 동종(同種) 기업들이 모여들면서 원자재나 부품 공급 등 물류조달비용이 대폭 절감되고 개별 중소기업이 하기 힘들던 교육·복지사업도 여러 기업이 공동으로 벌이게 됐다. 협력업체를 찾거나 인력 확보도 쉬워졌다. 정부의 탈(脫)규제정책과 세제지원으로 기업들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톡톡히 한 셈이다.

구로디지털단지는 노후화·슬럼화된 공업단지를 정비해 '굴뚝 없는 공장'으로 리모델링한 대표적 성공사례이다. 반월·시화 등 노후화된 산업단지나 대도시 내 공업지역 정비에도 아파트형 공장 같은 도시 재생의 모델을 이식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