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홍수로 경인선 개통 1년 늦어져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는 경인선이다. 1897년 인천 우각현(牛角峴)에서 공사를 시작해 1899년 제물포~노량진 노선을, 1900년 노량진~서대문 노선을 완공했다.1896년(고종 33년) 미국인 J.R.모스가 부설권을 얻어 1897년 3월 29일 공사를 시작했으나 자금부족으로 중단했다.
그 후 중단된 경인선 부설권을 일본인이 경영하는 경인철도회사가 인수해 1899년 4월부터 다시 공사에 들어가 그 해 9월 18일 제물포∼노량진 33.2km 구간을 개통(시험 운행중인 경인선 기차)했다. 당시 역사적인 경인선 기공식을 기념하는 기념비가 현재 인천 도원역 인근에 있다. 당초 1899년 서대문까지 철로를 놓기로 했으나 한강에 큰 홍수가 나는 바람에 한강철교 공사를 제때 마치지 못했다. 이듬해인 1900년 7월 5일 한강철교를 준공하고 7월 8일에 노량진∼서대문 노선까지 완전 개통했다.
당시 이 구간을 기차로 달리는 데 걸린 시간은 약 1시간 40분. 지금과 비교하면 느린 속도지만 서울과 인천을 오가려면 반나절을 걸어야 했던 당시 사람들에게 경인선 개통은 '천지가 진동하는' 대사건이었다.
- ▲ 제물포-노량진역 구간 개통(왼쪽사진)과 영암선 개통비(오른쪽사진)
대한민국 건국 이후 최초로 놓은 철도는 영암선(榮巖線)이다. 경상북도 영주와 강원도 철암 사이를 잇는 산업 철도로 1956년 1월 개통됐다. 당시는 산업발전의 기본인 지하자원의 개발과 수송을 위해 산업철도 건설이 시급한 과제였다. 이런 목적으로 처음 계획된 게 영암선(86.4km)으로 1949년 4월 8일 착공해 1950년 3월 1일 영주~내성 간 14.1㎞ 구간을 개통했다. 그러나 6·25전쟁이 터지면서 공사는 중단됐고, 휴전 후인 1953년 9월 28일 재착공해 1956년 1월 전 구간을 개통했다. 지금은 '영암선'이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이가 많지 않지만 1949년 착공 당시에는 해방 이후 최대 국책사업으로 불렸다.
태백산맥을 동서로 가로질러 건설한 영암선은 순수 우리 기술진에 의해 만들어졌다. 험준한 지형 때문에 터널과 교량이 많고 높낮이가 심한 것이 특징이다. 춘양~현동 간 임기 제1터널(971m), 춘양터널(698m)을 비롯해 33개의 터널은 총 길이 8312m에 달했다. 영암선 전체 구간의 10분의 1이 터널이었다. 교량도 55개로 총 길이가 2843m였다. 공사가 가장 어려웠던 경북 봉화 승부역 인근에 '영암선 개통비'를 세웠는데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을 받아 새겼다. 영암선은 그 후 동해북부선, 철암선을 하나로 연결해 1963년 5월 17일 영동선(嶺東線)으로 이름을 바꿨다.
첫 고속철도인 경부고속철도는 2004년 4월 1일 서울에서 대구까지 1단계 구간을 개통했다. 경부선이 포화 상태에 이르자 1980년대 말부터 고속철 건설을 추진했고 1994년 6월 독일의 이체(ICE), 프랑스의 테제베(TGV) 중에서 테제베를 차종으로 채택했다. 1단계 사업에 든 비용은 12조7377억원이나 됐다. 2002년에 착공한 2단계 사업은 대구~부산 구간과 대전·대구 시내 통과 구간을 신설하는 사업으로, 오는 11월 완공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