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지뢰' 설악산 대신 지리산 선정
국민의 쉼터이자 여가 장소인 국립공원이 처음 지정된 것은 1967년이었다. 그해 3월 정부가 제안한 '공원법' 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자 박정희 정부는 민·관 합동으로 지리산의 자연환경과 생태 등에 대한 조사를 벌여 1967년 12월 29일 지리산을 '제1호 국립공원'<사진>(국립공원 지정 전인 1965년 당시 지리산 등산 안내도)으로 지정했다.'제1호'의 영예가 지리산에 돌아간 것은 6·25전쟁과 관련돼 있다. 당시 공원법은 '우리나라의 풍경을 대표할 만한 수려한 자연경관지'를 국립공원 지정의 첫째 요건으로 규정했다. 이 기준에 따라 남한에서 풍광이 으뜸가는 것으로 꼽혀온 설악산이 우선 지정돼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다.
하지만 6·25때 격전지였던 설악산에는 군(軍)이 주둔하고 있었던 데다, 전쟁 당시 묻은 포탄과 지뢰가 곳곳에 깔려 국립공원 지정을 위해 필요했던 사전 환경조사 활동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국방부가 "지뢰 등을 제거하려면 많은 특수 전문인력이 필요하고 시일도 상당히 걸릴 것"이라는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아 지리산이 제1호로 자리매김된 것이다. 설악산은 그로부터 3년 뒤인 1970년 3월 24일 제5호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 ▲ 국립공원 지정 전인 1965년 당시 지리산 등산 안내도. / 국립공원관리공단 제공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은 미국 와이오밍주 등에 걸쳐 있는 옐로스톤(Yellowstone) 국립공원이다. 미국은 수십만년 전 화산이 폭발하면서 이뤄진 화산 고원지대인 옐로스톤을 1872년 국립공원으로 지정하면서 "국립공원은 모든 국민의 복리와 즐거움을 위한 공공(公共)의 공원이며 위락지"라고 선언했다. 이렇게 태동한 국립공원의 정신은 전 세계적으로 공유됐고,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작년 한 해 동안 연인원 3819만명이 넘는 탐방객이 국립공원을 찾았을 정도로, 국민들 누구나 이용하고 즐거움을 누리는 장소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국립공원 지정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사찰을 비롯한 사유(私有) 재산 이용 제한에 대한 반발 등이 컸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 펴낸 '국립공원 30년사'에는 "당시 설악산 신흥사의 주지스님이 건설부 청사에 와서 칼부림 소동을 일으킨 적이 있고, 경주 불국사도 주민들이 며칠 동안 집단으로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현재 국립공원은 1988년 지정된 월출산까지 20곳이다. 정부는 2012년까지 국립공원을 2~3곳 추가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