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년 ‘옷로비’ 등 2개 특검팀 동시 발족
1999년 10월 19일 두 개의 특별검사법이 나란히 국회를 통과했다.
하나는 옷로비 특검팀이었고, 다른 하나는 조폐공사 파업유도 특검팀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특검팀은 이렇게 두 팀이 동시에 탄생했다. 두 팀은 두 달간 수사를 벌인 후 사흘 간격으로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해체했다.
옷로비 사건을 맡은 최병모 특검<왼쪽 사진>은 신동아그룹 최순영 회장 부인 이형자씨가 남편의 구명을 위해 김태정 당시 법무부 장관의 부인 연정희씨를 상대로 로비를 시도한 정황을 밝혀냈다.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 특검팀은 진형구 당시 대검 공안부장이 '우리가 조폐공사 파업을 하게 만들었다'고 말한 취중 발언의 진위를 가리기 위해 구성됐다. 이 사건을 맡은 강원일 특검<오른쪽 사진>은 진형구 공안부장의 단독 행위라는 검찰 수사 결과를 뒤집고 강희복 전 조폐공사 사장을 구속했다.
특검제란 권력형 비리나 수사기관이 연루된 사건 등에서 검찰 대신 별도의 특별검사를 임명해 진상을 수사하게 하는 제도다. 특검이 처음 도입될 때는 법무부 장관의 부인과 검찰 고위간부가 연루된 사건인 만큼 검찰에 수사를 맡길 수 없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전년도인 1998년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의 성추문을 수사한 케네스 스타 특별검사가 각광을 받은 것도 계기가 됐다.
가장 많은 성과를 낸 것으로 평가받는 특검팀은 2001년 세 번째로 출범한 '이용호 게이트' 특검팀이다. 차정일 특검은 이용호 G&C 회장의 횡령 및 주가조작 혐의를 바탕으로 신승남 당시 검찰총장의 동생, 이형택 전 예금보험공사 전무, 이수동 전 아태재단 상임이사 등 김대중 전 대통령의 주변 인물들을 줄줄이 구속했다. 여기에 김 전 대통령의 아들 홍업씨의 비리, 신 총장과 김대웅 당시 광주고검장의 수사 내용 유출 정황도 밝혀내 이들의 사법처리를 이끌어냈다.
특검이 늘 성과를 내놓은 것은 아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측근비리 의혹을 파헤치기 위해 2003년 구성된 김진흥 특검팀은 최도술 전 총무비서관의 4억9100만원 불법자금 수수 혐의만 밝히고 문을 닫았다. 2005년 러시아 유전개발 의혹 특검은 성과를 거의 내놓지 못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특검 무용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2003년 대북송검 특검팀은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수사기간 연장을 거부해 수사가 중단됐고, 특검 수사 후 정몽헌 회장이 자살해 특검팀을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2008년 삼성비리 특검은 이건희 회장 등 삼성의 고위 간부 10명을 불구속 기소했고, 삼성 특검과 동시에 출범한 BBK 특검팀은 이명박 대통령을 둘러싼 각종 의혹을 모두 무혐의 처분했다.
특검은 한 번 할 때마다 대체로 20억원대의 예산이 들어간다. 특검은 고등검사장, 특검보는 검사장으로 예우한다. 특검이 처음 도입됐을 때는 특검과 특검보 각 한 명 체제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규모가 늘어나고 있다. 검사 향응접대의혹을 수사 중인 민경식 특검팀은 특검보 3명에 파견검사 10명, 특별수사관 11명, 파견공무원 42명 등 67명으로 구성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