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사관생도
1996년 초 공군사관학교는 이색적인 내용이 담긴 생도 모집요강을 발표했다. 우리나라 사관학교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생도를 받아들이기 위한 기준이 포함된 모집요강이었다. 사관학교 여성 생도 등장은 김영삼 정부가 여성인력의 적극적인 사회진출 정책을 추진한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 정부는 군에 대해 사관학교의 문호를 여성에게 열 것을 주문했고, 상대적으로 준비가 빨랐던 공군이 가장 먼저 '금녀(禁女)의 벽'을 깼다.여성생도들은 남성생도와 마찬가지로 금주·금연·금혼 등 '3금'을 준수해야 할 뿐 아니라, 간단한 기초화장은 허용되지만 목걸이·귀고리 등 액세서리와 매니큐어 등은 사용할 수 없었다. 예뻐지기 위한 성형수술도 금지됐다. 같은 건물에 남녀 생도가 함께 생활하는 만큼 서로의 내무실을 왕래할 수는 있지만 남녀 생도가 함께 있을 때는 반드시 문을 열어놓도록 했다.
이들은 언제나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녔다. 지난 2002년 9월 26일엔 박지연·박지원·황윤지 대위(현 계급)가 최초의 여성 전투기 조종사에 이름을 올렸다. 2007년 초엔 박지연 대위가 처음으로 여성 전투기 편대장이 됐다. 편대장은 전투기 4대를 지휘하는 조종사이다.
육사는 공사보다 1년 늦은 1998년 58기 선발에서 여생도를 처음 받아들였다. 23.3대 1의 경쟁률을 뚫고 24명이 들어왔다. 첫 육사 여생도 중 한 명이었던 강유미 대위는 그해 육사 전체 수석으로 합격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강 대위는 작년 여군으로는 처음으로 사법시험에 합격하기도 했다. 육사의 경우, 지금까지 입교한 총 여생도는 315명이다. 이 중 54명이 퇴교했고 179명이 임관했다. 현재 재학 중인 여생도는 82명이다. 육군 관계자는 "올해 여생도 선발 경쟁률은 37.5대 1이었다"며 "사관학교에 대한 여성들의 지원 열기가 더욱 뜨거워지는 것 같다"고 했다.
1999년 여성에 문을 연 해사의 경우, 첫해 여성 지원자들의 경쟁률은 무려 52.1에 달했다. 22명 선발에 1149명이 몰렸다. 특히 4년 후 졸업한 57기 여생도 중에는 2명이 해병을 지원하기도 했다. 여생도의 입교는 새로운 문화나 전통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해군 관계자는 "추위를 견뎌내는 내한(耐寒)훈련 때 남생도들만 있을 때는 팬티만 남기고 다 벗게 했지만, 여생도들은 반바지와 반팔티는 입게 한다"고 말했다.
또 여생도들이 자는 방에는 특별히 비상벨을 설치해 '돌발상황'에 대비하도록 했는데, 잠결에 누르는 경우가 있어 한밤중에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