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년 '돌망태'공법으로 계화도 간척 시작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국가 주도로 간척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된 것은 1960년대 들어서였다. 1960년 농경지 확장 5개년 계획이 수립되고 1963년부터 동진강 하구에서 총 4000여㏊를 매립하는 작업으로 간척사업이 시작됐다. 전라북도 부안군 계화 간척사업<사진>이었다.방조제 공사엔 이전까지 사용했던 흙가마니, 큰 바위가 아닌 철망태에 돌을 넣어 만든 덩어리를 물막이로 투입하는 '돌망태공법'이 세계 최초로 적용됐다. 조석 간만의 차가 커 유속이 6~7m/s로 빠른 서해안에 적합한 공법이었다. 조성된 간척지엔 섬진강 댐 건설로 생긴 수몰민 2700여가구가 이주해 와 농사를 지었다. 이곳에선 풍부한 일조량과 적은 병해충으로 우수한 품질의 쌀이 생산됐다.
기록으로 남아 있는 한반도에서의 첫 간척사업은 1235년 고려시대 강화도에 세운 연안(沿岸)제방이 꼽힌다. 농림수산식품부가 작년 11월 발간한 '간척백서'는 연안제방이 몽골군의 침입을 막는 동시에 그 안쪽으로 간척지가 개발돼 농작물을 생산했다고 설명한다. 이어 1248년엔 평안도 청천강 하구에 방조(防潮)제방이 건설됐고, 1253·1256년 강화도에 다른 간척사업이 이뤄졌다. 서기 330년 백제 벽골현(현 전북 김제시)에 제방 길이만 3.3㎞에 달하는 벽골제(碧骨堤)가 만들어졌다. 이런 기록을 볼 때 우리 선조들은 뛰어난 둑 쌓기 기술로 오래전부터 간척사업을 벌인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인 1818년 다산(茶山) 정약용이 펴낸 목민심서(牧民心書)엔 방조제·배수갑문 축조방법 등이 실려 있다.
1900년대 들어 간척사업은 개인 중심으로 이뤄졌다. 조선일보 제9대 사장을 지낸 계초(啓礎) 방응모(方應謨)도 훗날 민족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업을 추진하면서 언론·조림·육영(育英)과 함께 간척사업에 관심을 기울였다. 계초는 1935년부터 경기도 화성군 팔탄면에서 2년여 동안 간척사업을 벌여 농장 100만평을 조성했다.
간척사업이 현대적 공법을 사용해 대규모로 이뤄지기 시작한 건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60~1970년대였다. 이 시기엔 간척사업 선진국인 네덜란드로부터 기술을 적극 도입하는 등 간척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1965년엔 김해·목포·서산 등 7개 지구 5만3271㏊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간척사업이 추진되기도 했다. 지난달 27일 세계 최장 33.9㎞의 방조제가 착공 19년 만에 완공된 새만금 간척사업은 한반도 지도를 바꿨다. 한국의 국토 면적은 10만140㎢에서 간척 이후 10만541㎢로 0.4% 확장됐다. 간척사업을 통해 서울시 면적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4만100㏊(호수 포함)가 새로 생기게 된 셈이다.
1960년부터 작년 말까지 총 1634개 지구(9만685㏊)에서 간척사업이 시행됐고, 현재도 7개 지구(4만4415㏊)에서 공사가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