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년 1달러 450원(圓) 고정환율제로 출발
1948년 8월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외환당국은 미국과 '한·미 간 환금(換金)에 관한 잠정협정'을 맺고, 달러 대비 원화의 환율을 1달러당 450원(圓)으로 정했다. 1원(圓)은 그간 두 번의 화폐 개혁을 거쳐 현재의 1000분의 1원에 해당한다. 이처럼 우리나라 최초의 환율 제도는 시장의 통화 수급에 의해 환율이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일정한 환율을 고시(告示)하는 고정환율제도로 출발했다.당시는 달러가 부족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국내로 들어오는 모든 달러는 한국은행에 예치하도록 하고 시설·원료 등을 외국에서 사올 때 한은이 달러를 빌려주는 식으로 외환을 운용했다.
그러나 시중에서의 달러에 대한 수요는 높았다. 달러만 있으면 외국에서 수입해서 큰 이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원화가 필요했던 미군이 한은을 통해 달러를 매각하기도 했는데, 공정 고시환율은 달러당 400환이었지만 미군이 공매할 때는 달러당 729환에 낙찰되기도 했다. '환'은 1953년 화폐개혁으로 도입된 화폐 단위로, 1환은 10분의 1원에 해당된다.
미국이 한국 정부가 정한 고정환율을 적용하지 않고 달러를 공매하는 경우가 많아지자 1954년 우리 정부와 미국은 협정을 맺어 환율을 달러당 500환으로 고정하는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1964년이 되면서 고정환율제도는 단일 변동환율제도로 바뀌게 된다. 단일 변동환율제도는 달러당 255원을 하한선으로 정하고 시장에서 자유롭게 형성되는 환율에 따라 거래를 하게 하는 제도였다.
그러나 하한선이 기준 환율 기능을 하면서 변동환율제라는 명칭과는 달리 사실상 원화 환율을 고정시키는 것과 별 차이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 경제 여건과는 상관없이 타율적으로 미국 달러의 움직임에 따라 원화 가치가 결정됐다.
이런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1980년 2월 들어 미국 달러뿐만 아니라 일본 엔, 영국 파운드 등 주요국 통화의 가치까지 반영해 환율을 결정하는 '복수통화바스켓제도'로 바꾸게 된다. 그렇지만 이 역시 통화 바스켓(바구니)에 어떤 통화를 어떤 비율로 넣을지는 한은과 재무부가 결정했기 때문에 완전한 변동환율제는 아니었다.
1990년 3월 '시장평균환율제도'를 채택하면서 우리나라는 실질적인 변동환율제로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된다. 기준환율(시장평균환율)은 전날 은행들 사이에서 거래한 환율을 평균 내서 산출했다. 은행 간 거래 환율은 기준환율을 기준으로 해서 하루에 위아래로 0.4% 변동할 수 있게 제한했다<사진>(1997년 12월 외환위기로 달러당 1771원으로 치솟은 원화환율을 은행 환전창구 직원이 게시판에 적어넣고 있다).
우리나라는 그 후 하루 변동 제한폭을 지속적으로 확대하다가 2007년 12월 외환위기 때 완전히 폐지했다. 완전한 변동환율제도인 '자유변동환율제도'로 이행하게 된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원화 환율은 한국자금중개, 서울외국환중개 등 2개의 외환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