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표
"각국과 통상을 한 이후로 안팎으로 관계되는 일이 날로 증가하고 나라의 무역에 대한 소식이 그에 따라서 늘어나고 있다.(중략) 그래서 우정총국(郵征總局)을 설립하도록 명하니…."(고종실록)
우리나라 근대우편의 시작은 1884년 4월 22일 고종이 이 같은 칙령을 내림으로써 시작됐다. 고종은 우리나라 근대 우편의 선구자인 홍영식(1855~1884) 선생을 초대 우정총판에 임명했다.
7개월 정도의 준비기간을 거쳐 우정총국은 1884년 11월 18일 역사적인 첫 업무를 시작했다. 이때 발행한 우표가 바로 '문위(文位)우표'<가운데 사진>이다. '문위'라는 이름은 우표가 발행될 당시의 화폐 단위가 '문(文)'이었기 때문에 이후 수집가들이 붙인 것이라고 한다. 문위우표 발행 당시에는 우표라는 이름 대신 '우초'라는 단어를 썼다. 이 때문에 문위우표 전면에는 'COREAN POST'라는 영문과 함께 '대조선국 우초'라는 글자가 나온다.
이 우표의 발행 주체는 '대조선국'(大朝鮮國)이다. 하지만 디자인에서 인쇄까지 제조 작업은 모두 일본에서, 일본인의 손에 의해 이뤄졌다. 우정사업본부가 펴낸 '한국우정 100년사'에 따르면 문위우표는 5종에 걸쳐 총 280만장을 발행했다. 이 중 5문 우표(50만장)와 10문 우표(100만장)는 일부 일반에 판매했으나, 다른 3종(25문·50문·100문)은 일본에서 늦게 오는 바람에 세상 구경도 하지 못했다. 그해 12월 우정총국 개국 연회에서 갑신정변이 일어났고, 이것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우정총국이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최초의 우표<왼쪽 사진>는 1948년 8월 15일 발행된 정부수립 기념우표이다.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와 나라 꽃 무궁화를 도안으로 했는데, 각각 5만장씩 발행했다.
국가적 행사나 사건을 기리는 기념우표에도 1호가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기념우표<오른쪽 사진>는 1902년 10월 18일 발행됐는데, 고종의 즉위 40주년과 60세를 기념한 것이다. 1946년 5월 1일에는 '해방 1주년 기념우표'가 나왔다. 우리나라는 1945년 해방 직후에 우표를 발행할 시설이 없었다. 이 때문에 미 군정은 정상적인 우표를 발행할 때까지 일본우표에 '조선'이라는 이름을 덧입혀 사용했으며, '해방 1주년 기념우표'를 발행하면서 일본 우표의 사용을 금지했다.
사람 얼굴을 도안으로 한 우표는 드문데, 해방 이후 최초로 인물이 들어간 우표는 1946년 9월 10일 나왔다. 주인공은 이순신 장군. 미 군정은 이 우표를 첨성대, 무궁화, 한국지도, 신라 금관 도안 우표와 함께 발행했다. 이순신 장군 우표의 당시 가격은 10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