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군정청서 앤스테드 미군대위 임명
1946년 7월 13일 미 군정청 문교부는 경성대학과 9개 관립 전문학교와 사립 경성치과의학전문학교를 통합해 하나의 종합대학교<왼쪽 사진>(1946년 서울대 동숭동 캠퍼스 전경)를 만들겠다는 '국립서울대학교설립안(국대안)'을 발표했다. 국대안에 대해 학생·교직원들이 '친일교수 배격' 등을 외치며 반발했지만 문교부는 그해 8월 22일 법령 제102호 '국립서울대학교 설립에 관한 법령'을 공포하고 법학박사 해리 앤스테드(Harry Bidwell Ansted·오른쪽 위 사진) 대위를 총장으로 선임했다. 미국인 대위가 국립서울대 최초의 총장이 된 것이다. 법령에는 이사회에서 자격 있는 한국인을 천거해 본인의 수락을 받아 총장을 임명하게 돼 있었지만 군정 기간 중에는 군정장관이 임명하도록 하는 규정이 있어 미국인이 첫 서울대 총장이 됐다.하지만 외국인 총장에 대한 반발이 거세지자 앤스테드 총장은 선임 1년 2개월여 만인 1947년 10월 25일 이춘호<오른쪽 아래 사진> 이학박사에게 총장 자리를 넘겨줬다. 서울대 2대 총장이 한국인으로는 첫 서울대 총장인 셈이다. 이 전 총장은 동맹휴학과 등록거부 등을 잘 마무리지었지만, 1948년 사임했고 6·25전쟁 때 납북됐다. 현 이장무 총장은 24대 총장이다.
서울대 총장은 1991년 또 하나의 '제1호' 역사를 쓰게 된다. 김종운 교수(영문과)가 최초의 직선제 총장이 된 것이다. 김 총장은 당시 교수의 90.7%가 참가한 투표에서 과반을 훌쩍 넘기며 초대 직선제 총장이 됐다.
김 총장 이전까지만 해도 서울대 총장은 문교부가 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는 임명직이었다. 1989년 2월 28일 열린 총장선출방식에 대한 공청회에서 '총장후보지명위원회가 선정·제시한 후보 5~10인을 대상으로 전(全)교수가 직접투표해 2인 이상의 최종후보자'를 선출하는 방식이 확정됐고, 지난 2006년 24대 총장선거부터는 학교 직원들도 1인 0.1표로 총장 선거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서울대의 전신이자 일제 식민치하의 국립대로, 일본이 세운 6번째 제국대학인 경성제국대학은 1924년 5월 1일에 2년 과정의 예과(학부진학을 위한 예비과정)만으로 출발했다. 법문학부와 4년제 의학부가 생긴 것은 2년 뒤 예과 첫 졸업생들이 나오면서부터였다. 본과가 생기면서 본격적인 경성제국대학이 만들어졌고, 경성제국대학의 초대 총장으로는 핫토리 우노키치(服部宇之吉) 동경제대 교수(문학부)가 취임했다. 1924년 아리요시 주이치(有吉忠一)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이 예과의 총장 역할을 담당했지만, 대학의 모습이 본격적으로 갖춰진 뒤 초대총장은 핫토리 우노키치 총장으로 평가되고 있다. 경성제국대학은 해방과 함께 경성대학으로 개칭했고, 이후 1946년 설립된 서울대에 통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