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수립 후 '대한민국 1호 변호사'의 기록은 확실하지 않다. 대한변호사협회(변협)의 회원등록부에 따르면 정부 수립을 선포한 사흘 뒤인 1948년 8월 18일 김종렬 변호사가 등록한 것으로 돼 있다. 적어도 변협 기록상으로는 '대한민국 1호 변호사'인 셈이다. 그러나 그의 활동 기록이 자세히 남아 있지 않고, 당시 일제시대와 미군정기 판·검사 등으로 활동하던 법조인들이 줄줄이 변호사로 등록하던 시기라는 점 때문에, 법조계에서는 대한민국과 대한제국을 통틀어 홍재기 선생을 '1호 변호사'로 인정하고 있다.
그는 당시 최고법원이던 대심원<왼쪽 사진>의 판사로도 활동했고, 일제에 국권을 빼앗긴 뒤에도 억압받는 조선인들을 위해 많은 변호활동을 했으며, 6·25전쟁이 발발했을 때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 납북됐다.
소수이긴 하지만 '1호가 다른 사람일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다. 대한변협 관계자는 "협회 소장 '변호사 명부 1호' 주인공이 조선일보 사장 등을 지낸 유문환(劉文煥)으로 기재돼 있어, 더 자세히 조사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도 있다"고 말했다.
반면 '대한민국 1호 여성 변호사'에 대해서는 논란도 없고, 기록도 많다. 1951년 여성 최초로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한 이태영(李兌榮) 박사(1914~1998)는 '최초의 여성 변호사'이자 인권운동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서른여덟에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했지만, 야당 정치인(고 정일형 박사)의 아내라는 이유로 이승만 대통령이 판사 임명을 거부한 일화는 유명하다.
이태영 변호사는 1956년 '한국가정법률상담소'를 세운 뒤 39년 동안 소장직을 맡으며 '축첩(蓄妾·첩을 둠) 반대 운동' '동성동본 금혼제 폐지 운동' 등에 앞장서며 법률상의 남녀 불평등을 없애는 데 평생 헌신했다. 19세기 후반부터 '송사(訟師)' '율사(律師)' '대언인(代言人)' 등의 이름으로 알려지다 '변호사'라는 명칭이 등장한 뒤 100여년이 흘렀다. 그 1세기 동안 변호사 숫자도 크게 늘어나 현재 대한변협에 등록된 회원 수는 1만1667명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