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상돈 "여기는 정상, 더 오를 데가 없다"
오은선(44) 대장이 지난달 27일 안나푸르나에 등정하는 모습은 전국에 TV로 생중계됐다. 세계 여성 중 최초로 8000m급 14좌 완등자가 된 그는 베이스캠프로 돌아와 곧바로 본지와 국제 전화 인터뷰에도 응했다. 신비한 설산 히말라야가 한국인의 안방 속으로 성큼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불과 33년 전인 1977년만 해도 이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당시에는 원정대가 한국에 소식을 보내려면 우편 심부름꾼인 '메일 러너(mail runner)'를 베이스캠프에서 지역의 간이 전신소까지 내려 보내야 했다. 이렇게 열악한 여건 속에서 한국인 최초로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를 등정한 인물이 바로 고(故) 고상돈<왼쪽 사진> 대원이었다. 이는 한국인 최초의 히말라야 등정이기도 했다. 그는 귀국 후 카퍼레이드를 하며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오른쪽 사진>.
대한산악연맹이 처음 에베레스트 등정을 계획하고 네팔 당국에 입산허가 신청서를 접수한 것은 지난 1971년이었다. 그때는 히말라야 등반 허가 절차가 지금보다 훨씬 까다로웠고, 입산 허가자의 숫자도 극히 제한돼 있었다. 네팔 당국의 입산 허가서는 1973년 12월에야 한국에 도착했고, 허가 시기는 1977년으로 못 박혀 있었다. 입산 허가에 3년, 입산에 4년이 필요했던 것이다.
에베레스트 원정대는 1977년 7월 전 국민적 환송 속에 네팔로 떠났다. 후원사에서 제반 절차를 모두 지원해 주는 지금과 달리, 당시엔 대원들이 직접 화물의 하역과 통관까지 진행했다. 덕분에 네팔 카트만두에서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 도착하는 데만 20일이 넘게 걸렸다고 한다.
한국 원정대는 박상열 부대장이 1차 공격에 나섰지만 산소부족 등으로 실패했고, 곧바로 2차 등정조인 고상돈 대원과 셰르파 펨바 노르부가 나섰다. 고상돈 팀은 9월 15일 새벽 5시 30분 제5캠프를 떠난 지 7시간 20분 만에 정상에 오르는 감격을 맛봤다.
오은선 대장은 안나푸르나를 무산소로 등정했지만, 당시엔 8000m 이상의 높이는 무조건 산소마스크를 써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고상돈이 산소마스크를 쓰고 정상에서 태극기를 휘날리는 모습은 한국 고산 등반역사의 상징적인 장면이 됐다. 고상돈은 "여기는 정상이다. 더 오를 데가 없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지금의 한국은 세계 최초의 여성 14좌 완등자를 배출할 만큼 질적·양적으로 성장했다. 에베레스트 등정 30주년을 맞은 지난 2007년에는 무려 17명의 한국 산악인이 앞다퉈 세계 최고봉의 정상에 오르기도 했다. 33년간 한국인에게 히말라야와 에베레스트는 그만큼 낮고 가까워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