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炳玉국장, 신뢰·공평 등 6대 지침 시달
광복 직후인 1945년 10월 21일 미(美) 군정청에 경무국(警務局·The Police Bureau)이 창설됐다. 경찰은 경무국 창설일을 대한민국 경찰의 탄생일로 삼는다. 경무국은 그해 12월 만든 '조선국립경찰(朝鮮國立警察)의 조직(組織)에 관(關)한 건(件)'이란 문서에서 '조선 경찰은 하나의 국립 경찰부대임. 조선인 경무국장은 조선내 전 경찰의 최고사령관임'이라는 내용을 명시했다.<사진>(1946년 7월 1일 경무부 공안국에 여자경찰과가 설치돼 처음으로 모집한 여경들의 행진 모습)
초대 경무국장에는 유석(維石) 조병옥(趙炳玉·1894~1960) 박사<작은 사진>가 임명됐다. 조 박사는 충남 천안에서 태어나 공주 영명학교, 평양 숭실학교, 연희전문을 거쳐 미국에 건너가 컬럼비아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조 박사는 신간회(新幹會) 창립위원과 재정 총무, 조선일보사 전무 겸 영업국장을 지냈다. 그러나 광주학생운동(1929년)을 배후에서 조종했다는 혐의와 수양동지회(修養同志會) 사건(1937년)으로 각각 3년과 2년 동안 옥고를 치렀다. 광복 후에는 송진우(宋鎭禹)·장덕수(張德秀) 등과 한국민주당을 창당했다.
조 박사는 초대 경무국장에 취임하며 '경찰 직원들에게 고함'이라는 지시문을 하달했다. 국민의 신뢰를 받아야 할 경찰관, 냉정하여야 할 경찰관, 공평하여야 할 경찰관, 검소하여야 할 경찰관, 일상에 수양하여야 할 경찰관, 내외 정세에 사명을 알아야 할 경찰관 등 조 박사가 강조한 6가지 지침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경찰관들이 새겨들어야 할 내용을 담고 있다.
1948년 7월 17일 마련된 정부조직법에 따라 경찰 조직은 내무부의 치안국으로 축소 개편됐다. 3년 3개월 동안 재임하며 초대이자 마지막 경무국장이 된 조 박사는 의미심장한 고별사를 남겼다.
"경찰은 영구한 존재이고 정치동향 여하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예상되는 인사변동에 절대 동요치 말고 신생 대한민국 정부의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관으로서 복무에 충실하기를 바란다. 동시에 정부 수립 후 국내 국외 정세가 복잡하므로 모든 경찰관들은 온 힘을 발휘하여 헌신적으로 노력하기를 바라는 바이다."
조 박사는 1960년 제4대 대통령 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나섰으나 선거를 한 달 앞둔 2월 15일 미국 월터 리드 육군 병원에서 서거했다. 1962년 건국공로훈장이 추서됐다.
개편된 치안국은 1974년까지 유지됐다. 초대 이호(李澔) 치안국장(1949년 1월 7일~1950년 3월 1일)부터 최석원(崔錫元) 국장(1973년 1월 16일~1974년 8월 22일)까지 29명이 경찰 수장(首長)에 올랐다.
1974년에는 광복절 기념행사 때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을 계기로 치안국이 치안본부로 격상돼 박현식(朴賢植) 육군 중장이 치안본부장에 올랐다. 1991년 8월 경찰청이 정식 발족되며 김원환(金元煥) 치안총감이 초대 경찰청장에 임명됐다. 현 강희락(姜熙洛) 청장은 제15대 경찰청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