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 서울의 한 초등학교 6학년 담임교사가 학생들이 학업성취도평가 시험을 보지 않고 체험학습에 참여하는 걸 허락했다는 이유로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해임처분을 받았다. 다음날 해당 교사와 전교조 회원들, 청소년 인권단체의 회원 등이 그 학교 학생 8명과 함께 교문 앞에서 '선생님을 빼앗지 말아주세요'라고 쓴 피켓을 들고 시위했다. 이걸 본 다른 교사들이 학생들의 종이 피켓을 빼앗고 제지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이 사건에 대해 "학생들 피켓을 수거한 것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며 시위를 제지한 교사들에게 재발방지 교육을 하라고 교장에게 권고하는 결정을 내렸다.
초등학교 6학년생이면 사회 문제에 대해 독자적 판단을 할 만큼 정신적으로 성숙했다고 보긴 힘들다. 학생들이 학업성취도평가가 갖는 교육적 의미까지 충분히 생각한 뒤 피켓 시위에 참석하진 않았을 것이다. 교장과 교사로서는 아이들이 전교조 교사나 청소년 인권단체 사람들에게 휘둘리는 건 아닌지 걱정이 돼 시위를 제지했을 것이다. 인권위는 이런 교장·교사의 행동을 인권 침해라고 판단해버렸다.
지난해 친(親)전교조 성향인 경기도교육감이 학생인권조례 초안에 '학교 내 집회·결사의 자유 보장' 조항을 넣으려다가 유보했었다. 학생들에게 교내 집회를 허용하면 학업 분위기를 해칠 수 있고, 자칫 학생들이 엉뚱한 생각을 가진 어른들에게 이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기 때문이다. 실제 2004년 전교조 교사 2명의 파면으로 불거졌던 인천 어느 외고 사태 때 전교조 본부 사람들까지 지원 시위를 하는 와중에 학생들이 혈서(血書)를 쓰는 일까지 있었다. 결국 학부모 265명이 "아이들 학습 환경이 침해당했다"면서 전교조 교사들을 상대로 5억원대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2004년 교장선출보직제 등을 주장한 한 전교조 집회에선 사회자가 '학생 동지'라는 말까지 써가며 학생들 동참을 유도한 일도 있다.
학생들이 학교 밖 세력이나 전교조 같은 이념적 교사단체의 선동에 넘어가 교내에서 확성기를 들고 구호를 외치고 피켓시위를 하는 광경은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그렇지 않아도 교원평가, 학업성취도 평가, 교장 공모제 같은 쟁점을 놓고 교육계가 갈라져 있다. 학생들에게 집회나 시위를 허용하면 학생들이 전교조파(派)와 비(非)전교조파로 갈려 맞시위를 벌이는 사태가 생길지도 모른다. 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인권은 안정된 학교 분위기 속에서 질(質) 높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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