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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제재와 핵실험의 악순환

namsarang 2010. 7. 30. 22:28

[하영선 칼럼]

금융제재와 핵실험의 악순환

  • 하영선 서울대 교수·국제정치학
           ▲ 하영선 서울대 교수·
              국제정치학

김정일 후계체제가 新생존전략 택하도록
선군정치에 따르는 비용을 대폭 늘리면서
새 전략으로 얻을 이익은 확신시켜야

한반도 긴장의 수위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천안함 사태를 유엔 안보리 의장 성명으로 일단락짓고 6자회담 개최를 위한 외교전이 본격화되리라는 예상과는 달리 미국은 대규모의 한·미 연합 해상훈련에 이어 본격적 대북 금융제재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북한 국방위원회 대변인은 "필요한 임의의 시기에 핵 억제력에 기초한 우리식의 보복성전을 개시하게 될 것이다"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6자회담이 공동성명 최종합의를 위해 난항을 거듭하고 있던 2005년 9월 15일 미 재무부는 북한 불법 금융 활동의 창구 역할을 한 방코 델타 아시아(BDA)를 금융 제재했다. 이어서 북한 기업들을 대량살상무기 관련업체로 지명하고 미국 및 세계 금융기관들에 북한의 추가 불법 금융활동을 조심하라고 권고했다.

북한의 대응은 미국의 예상보다 훨씬 복잡했다. 북한 당국은 미국의 금융제재는 사실상 북한의 '제도 전복'을 노리는 것이며 '선(先) 금융제재 해제, 후(後) 6자회담'을 강하게 주장했다. 2006년 6월 1일 미국 대표의 평양 방문을 초청하면서 "미국이 금융 패권을 휘두르며 우리의 '선(先) 핵 포기'를 실현해 보려는 것은 물 위에 비친 달을 건져보려는 것과 같은 허망한 망상이다. 미국이 우리를 계속 적대시하면서 압박 도수를 더욱더 높여 간다면 우리는 우리의 생존권과 자주권을 지키기 위하여 부득불 초강경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

결국 북한은 2006년 7월 5일 대포동 2호를 발사하고 10월 9일에는 핵실험을 했다. 유엔 안보리가 즉각 제재결의 1718호를 채택했고, 북한은 일단 중국의 중재로 전술차원으로 6자회담 복귀를 선택했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2006년 11월 1일 "우리는 6자회담 틀 안에서 조·미(朝·美) 사이에 금융제재 해제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전제하에 회담에 나가기로 하였다"고 했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지난주 서울에서 열린 한·미 외교·국방장관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추가 대북 경제제재 조치를 실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 조치가 북한 전체에 대한 것이 아니고 잘못된 핵 선군 정책의 수정을 위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회견 직후 미 국무부 브리핑은 이번 제재가 단순히 천안함 사태나 6자회담을 넘어서서 북한의 지도자 후계 문제와 관련 있다는 것을 조심스럽게 암시했다.

2010년의 신(新)경제제재와 2006년의 경제제재는 북한에는 기본적으로 같은 것으로 받아들여질 위험이 높다. 2006년의 악순환이 반복된다면 북한은 '보복 성전'의 성명에서 밝힌 것처럼 핵무기의 실전화를 위한 3차 핵실험을 거쳐 6자회담에 복귀하려고 할 것이다. 따라서 2010년의 김정일 후계 준비체제가 2006년의 김정일 선군체제의 잘못된 선택을 따르지 않게 하려면, 자신들이 핵 선군정치 대신 선(先)경제정치를 선택할 경우 미국의 대북정책이 '제도전복'이 아니라 '제도지원'이 될 수 있는 것으로 인식하게 만들 수 있는 구체적 정책이 필요하다.

북한의 김정일 후계 준비체제가 2006년의 선택을 반복하면 예상과는 전혀 다른 현실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우선 중국의 반응이다. 두 번의 핵실험과 천안함 사건에 이은 세 번째 핵실험에 중국이 또 한 번 냉정과 자제로써 대처할지는 미지수다. 최근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한·미 해상 합동훈련에 대응해서 중국과 북한이 황해에서 군사훈련을 할 계획은 없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흥미 있는 답변을 했다. "이러한 관점은 '전형적 냉전 사고'이며 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도 어느 한 나라나 군사동맹보다 이 지역 국가들의 공동 노력으로 달성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과거 어느 때보다도 중국의 지원이 절실한 김정일 후계체제는 중국의 탈(脫)냉전사고에 불가피하게 적응해야 한다. 다음으로 대규모 경제 개혁을 추진해야 할 김정일 후계체제는 3차 핵실험 후 불어닥칠 본격적 경제제재를 현실적으로 감당해내기 어렵다.

악순환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새로 등장하는 김정일 후계체제가 신생존전략으로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도록 선군정치에 따르는 비용을 대폭 늘리는 동시에 신생존전략 추진세력의 안정성을 당사자들이 확신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