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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이 또 핵실험을 하면…

namsarang 2010. 7. 28. 22:54

[박두식 칼럼]

北이 또 핵실험을 하면…

 

박두식 논설위원

5년 전 미국 금융 제재에 북은 핵실험으로 대응
美는 북 요구 다 들어줘… 북이 이번에도 새로운
핵실험으로 맞서면 어떻게 할 것인가

북한이 다시 3차 핵실험 카드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북한 김영춘 인민무력부장이 최근 "새롭게 발전된 방법으로 핵 억제력을 더욱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하자,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도 "과거에도 핵실험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주저없이 단행했다"고 했다. 북한은 2006년 10월과 2009년 5월 두차례 핵실험을 실시했다.

북한은 1차 핵실험 직후 세계 초강국 미국이 허둥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핵실험 카드'의 효력을 실감했을 것이다. 미국은 2005년 9월 북한이 100달러짜리 지폐를 감쪽같이 위조한 '수퍼노트(supernote)를 만들어 대량 유통시켰고, 마카오 소재 BDA(방코델타아시아)은행이 북한이 불법(不法)자금을 세탁하는 데 이용됐다며 BDA 계좌 50여개에 들어있던 북한 돈 2500만달러를 동결(凍結)시켰다.

미국은 이 위폐가 북한산(北韓産)이라는 증거를 잡기 위해 중국계 범죄 조직 '삼합회'와 IRA(북아일랜드공화국 군)에 비밀 요원을 침투시켰다. 그 결과 2005년 여름 미국 뉴저지와 캘리포니아 일대에서 삼합회가 유통시킨 400만달러의 위폐가 북한으로부터 왔고, IRA 리더인 숀 갈란드가 북한산 위폐 100만달러를 영국과 동유럽에서 유통시켰다는 증거를 확보했다고 한다. 미국은 곧바로 BDA 계좌에 들어있는 북한 돈의 인출을 막았다.

그런데 BDA 계좌 동결 조치가 미국 관보(官報)에 실린 날이 공교롭게도 북핵 문제 해결의 방향과 원칙을 담은 '9·19 공동성명'에 합의한 6자회담과 시기적으로 겹쳤다. 북한은 미국이 뒤통수를 쳤다고 반발했다. 노무현 정부는 북한보다 더 흥분했다. 노 대통령은 그해 11월 경주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때 부시 대통령에게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고 따졌고, 부시는 "우리 돈을 위조하는데 가만히 있으라는 거냐"고 맞섰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에 따르면 노(盧) 정부는 그해에 남북정상회담을 갖기로 했는데, BDA 때문에 무산됐다고 했다.

북한은 2006년 들어 6자회담을 보이콧하고, 7년간 중단했던 미사일 발사 실험을 재개(再開)했고 이어 그해 10월 9일 1차 핵실험을 실시했다. 그러자 이번엔 미국의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 북한 핵실험 직후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가 베이징으로 가 북한 김계관 외무성 부상을 만나 북한을 달랬고, 이어 2007년 1월 베를린 미·북 비밀 접촉을 거쳐 2월 6자회담에서 BDA 계좌에 묶인 북한 돈 2500만달러를 풀어줬다. BDA 공방에서 공세를 편 것은 미·북 미사일 합의를 깨고 1차 핵실험까지 실시한 북한이었고, 북한은 돈도 그대로 되돌려 받았다. 이게 'BDA 제재'의 전말이다.

그런데도 한·미 정부는 최근 BDA 제재를 '성공모델'로 거론하기 시작했다. 얼마전 서울을 찾은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BDA를 통해 우리는 원하는 결과를 얻었다"고 했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이 BDA 당시 피가 얼어붙는다고 했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 말도 남북 접촉에서 우리 정부 대표가 북측에 "금융은 경제의 핏줄 같은 것인데 제재를 받으면 심장이 멈출 수 있다"고 말한 것을, 북한 김계관 대표가 미국에 그대로 옮긴 내용을 재인용한 것이다. 우리 정부 일각의 반응을 보면 마치 'BDA 제재를 북한의 문(門)을 열고 닫는 만능열쇠'로 여기는 듯하다. 북한은 지난 4월 죽은 김일성 생일파티에 60억원을 들여 불꽃놀이를 했고, 작년 한 해 미사일과 핵실험에 7억달러를 쏟아부었다. BDA로 묶인 2500만달러가 북한 경제에서 적지 않은 돈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 때문에 북한이 무릎을 꿇거나 망할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한다.

미국은 조만간 'BDA 제재'를 한층 발전시킨 대북(對北) 금융제재 조치를 꺼내들 예정이다. 여기에 북한은 3차 핵실험으로 맞서고 있다. 이번에는 플루토늄을 이용한 1·2차 핵실험과 달리 우라늄탄이나 새로운 방법을 동원할 가능성이 꽤 있다. 그것만으로도 북의 핵 능력은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단계로 진입하게 된다. 우리에겐 악몽같은 시나리오다. 한·미는 이런 상황에 어떤 답을 갖고 있는 것일까. 북한이 천안함 도발의 대가를 치르도록 해야 하지만 제재(制裁)는 목표가 분명하고, 상대를 꼼짝 못하게 만드는 후속 조치가 준비돼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제재에 따라 발생할 모든 상황을 통제·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우리는 이런 준비와 각오가 돼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