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동한 사회부장
우근민(禹瑾敏) 제주지사는 지난 2일 제주도의회와 함께 해군기지 건설과 관련된 모든 공사의 중단을 정부에 요청했다. 해군기지와 관련된 정책 결정에서 '절차적 정당성'이 미흡해 강정마을 갈등이 생겼는데, 이 갈등을 먼저 해결하고 나서 공사를 하는 게 순리(順理)라는 것이다.
우 지사는 6·2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직후부터 해군기지 건설 공사를 막는 일련의 조치를 해왔다. 6월 4일 해군이 착공하려고 하자, 당선자 신분으로 "주민 간 갈등이 있는 상황에서 착공하면 안 된다"고 막았다. 이어 우 지사가 임명한 고창후(高昌厚) 서귀포시장은 7월 9일 해군의 가설 건축물 공사에 대해 중지 명령을 내렸다. 고 시장은 386세대 변호사 출신으로 해군기지 특별법을 만들어 보다 더 획기적 지원을 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사람이다.
우 지사 주장대로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싸고 강정마을 주민 간 갈등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강정마을 주민 1500여명 가운데 찬성 주민이 600여명, 반대 주민이 600여명으로 찬반 세력이 팽팽한 것으로 알려졌다. 토지 보상 대상 지주(地主) 120여명 가운데 강정 주민은 75명인데, 찬성이 38명 반대가 37명으로 역시 팽팽하다고 한다.
하지만 제주 해군기지 사업은 법적·행정적·정치적 절차가 모두 끝난 국책사업(國策事業)이다. 정부는 2008년 9월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해군기지를 민군(民軍) 복합형 관광미항(美港)으로 건설한다는 계획을 발표했고, 국방부는 환경영향평가와 공청회 등 법적 절차(節次)를 모두 거쳐 올 3월 군사시설사업을 최종 승인했다. 해군기지 건설 반대세력이 지난해 김태환(金泰煥) 지사 소환을 추진해 작년 8월 주민소환투표를 했지만, 투표율이 11%에 그쳐 개표 요건인 3분의 1을 넘지 못해 무산됐다. 이에 따라 해군측은 6·2지방선거 이전에 몇 차례 착공을 추진했으나, 선거를 의식한 김태환 지사의 정치적 고려(考慮) 탓에 연기됐다고 한다.
제주 현지에서는 우 지사가 도의회 힘까지 빌려 법적·행정적 절차가 끝난 국책사업에 제동을 건 것을 일종의 '승부수'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이번이 마지막 봉사"라고 공언(公言)하고 있는 우 지사로서는 마지막 임기에 정부로부터 '큰 선물'을 확보해 제주도민들이 기억할 만한 지사로 남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국방부와 해군은 난감해하고 있다. 제주도에 추가로 내놓을 마땅한 선물도 없고, 그렇다고 공사를 강행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해군기지 자체가 엄청난 큰 선물 아니냐고 되묻고 있다. 제주도의 자체분석에 따르면, 공사기간 제주 전체에 미치는 경제적 효과가 3815억원이며, 기지건설 이후 군장병과 가족 면회에 따른 관광객이 7만명에 달하는 등 연간 914억원의 경제효과가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우 지사는 정부측에 요구하는 것이 뭔지 아직 풀지 않고 있다. 일단 공사 중단을 요청했으니, 정부에서 먼저 선물을 보여달라는 뜻인 듯하다. 하지만 한 나라의 국방(國防)이 달린 국책사업을 볼모로, 흥정하듯 대가를 얻겠다는 태도는 국민을 설득하기 어렵다. 우 지사는 정부에 원하는 게 있으면 솔직히 말을 해야 한다. 해군기지 공사는 공사대로 추진하면서 정부에 요구할 게 있으면 당당히 요구하면 된다. 솔직히 이야기하는 게 주민 간 갈등 해소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