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갈등을 해결하려면?
저는 마음이 아주 심약해 그런지 조그만 일에도 마음 속에서 갈등이 자주 일어납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마음이 강건한지 갈등을 잘 풀어가는 것 같은데 저는 왜 이리 마음이 약한지 모르겠습니다. 조그만 일에도 눈앞이 캄캄해지고 머릿속이 복잡해집니다.
그래서 책을 보면서 길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여러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 며칠을 머리를 싸매고 생각을 거듭해 보는데도 늘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어떻게 해야 갈등 앞에서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잘 해결할 수 있을까요?
A. 자매님이 겪는 마음의 힘겨움이 어떤 것인지 잘 압니다. 아마도 많은 분이 자매님 사연을 읽으면서 '나도 그런데'하는 마음일 것입니다. 크든 작든 갈등 앞에서 당당하게 서 있을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거의 모든 이들이 인생사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갈등에 시달리며 살고 있으니 자매님 혼자만 못난 사람인 것처럼 자책하는 생각은 버리셔도 될 것입니다.
갈등은 왜 생길까 하는 것부터 이야기해 드리지요. 심리학자 레빈은 "사람들은 싫지만 하지 않을 수 없는 일들과, 하고는 싶지만 당장 할 수 없는 일 사이에서 부대끼며 살아간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일반적 갈등 상황은 한 사람이 자신의 진로를 두고 여러 가지 선택 사이에서 방황할 때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이런 갈등을 해결하는 여러 가지 방법이 나왔는데 우선 그중에서 좋지 않은 방법부터 말씀드리지요.
가장 안 좋은 방법은 마구잡이식 방법입니다. 갈등을 겪는 사람에게 '무슨 고민을 하느냐, 인생 대충 사는 거야'하며 두루뭉술하게 풀어가는 것이 최악의 방법입니다. 두루뭉술하게 일을 처리하는 사람들은 대개 편견이 심해 균형 잡힌 판단을 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는데, 갈등은 사회적 의무와 무의식적 욕망이 충돌하는 경우이기에 두루뭉술하게 해결한다고 하면서 자아나 무의식중 하나를 심하게 억압하게 되고, 결국 신경증으로 발전하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두 번째 좋지 않은 방법은 책에서 해법을 찾는 경우입니다. 많은 분이 갈등 상황에서 빠져나오려 책을 읽습니다. 그리고 책에서 길을 찾았다고 하는 분도 많은데 이런 현상을 일컬어 '아버지 콤플렉스(father complex)'에서 비롯된 환상이라고 합니다.
왜냐면 사람이 처한 갈등상황은 사람마다 모두 달라 처방 역시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즉, 아주 지독하게 개인적 방법만이 갈등해법이 될 수 있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보편적 방법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수영을 배우려고 책을 보는 것과 물속에서 수영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아주 개인적 경험에 의해 수영을 익히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갈등 역시 책에서 도움을 받을 수는 있지만, 책이 오로지 나에게 적용되는 길을 알려주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좋지 않은 방법은 너무 깊이 생각하고 숙고하는 것입니다. 많은 분이 갈등 상황에 접하면 머리를 싸매고 고민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너무 많이, 너무 깊이 숙고하는 것은 좋지 않은 선택을 할 위험이 크다고 합니다. 바로 사람 의식의 한계 때문입니다.
의식은 능력이 제한적이라 한 번에 감당할 갈등의 양이 그리 크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사소한 갈등은 이성적 사고에 의해 해결되지만 심각한 갈등은 그렇게 해서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지나친 숙고가 더 많은 갈등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판올던이란 심리학자는 "복잡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너무 깊이 생각하는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즉흥적으로 선택하는 것보다 나쁘다"면서 "결정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파악한 후에는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림으로써 무의식이 결정하게 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 것입니다.
심리학자 융은 "만약 어떤 사람이 자기 내면의 상반된 요소들끼리 갈등하는 것을 견딜 수 있다면 감정에 휘둘림을 당하지 않고, 자신이 놓인 상황을 바라볼 수 있다면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그의 심혼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른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렇다면 신자로서 선택할 최선의 갈등 해소방법은 무엇일까요? 홀로 조용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사람의 무의식을 가장 활성화하는 최선의 생존기제이고, 장기적 관점에서 지혜로운 선택을 하게 해주는 성령의 이끄심이며, 하느님께서 내 인생에 들어오셔서 나를 이끌어 가도록 마음을 열어주는 은총의 도구기 때문입니다.
주님 역시 갈등이 심할 때마다 기도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특히 수난의 길을 가시기 전 겟세마니 동산에서 기도하신 것은 가장 유명한 이야기지요. 자매님도 주님처럼 갈등상황에서 막막할 때면 생각을 내려놓으시고, 무조건 주님께 의탁하는 기도 시간을 많이 갖길 바랍니다.
물에 빠진 사람이 혼자 힘으로 나오려고 허우적거리면 더 빠져들지만, 힘을 빼고 의지하는 마음을 가지면 몸이 뜨듯이, 갈등 역시 마음의 힘을 빼고 주님께 모든 것을 의탁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홍성남 신부(서울 가좌동본당 주임) cafe.daum.net/withdob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