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窓)/이런일 저런일

여름바다는 성숙한 여자 같은 느낌

namsarang 2010. 8. 17. 23:28

[ESSAY]

여름바다는 성숙한 여자 같은 느낌

  • 한승원 소설가
          ▲ 한승원 소설가

심청전 주제는 '효'라고 하지만 감춰진 주제는 '깨달음'이다

바다는 별밤엔 거무스레하고 달밤엔 샛노랗다
그러나 바다는 늘 푸르다고 해야 정답이다

편협된 눈을 가르치는게 교육의 현실이다

추사 김정희 선생은 ‘인재설(人才說)’이라는 글에서, 모든 아이가 다 똑똑한 천재로 태어나지만 어버이나 선생들이 그 아이들을 미욱한 바보로 만든다고 했다.

그 시절에도 요즘 같은 ‘족집게’ 과외 선생이 있었던 모양이다. 능력 있는 어버이는 자식을 위하여 독선생을 모시는데, 독선생은 그 자식들에게 과거시험에 출제될 만한 대목만을 가르치고 달달 외게 한다. 책 전체를 읽지 않으므로, 아이들은 세상을 관광(寬廣·마음이 아주 넓음)하게 보는 눈을 갖추지 못하고 편협한 눈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고전적인 작가의 작품 전체를 읽히지 않고, 그 작품의 주인공 이름이 무엇이고, 줄거리는 어떠하고, 주제는 무엇이고, 시험에 출제될 만한 중요한 대목이 어떤 것인가를 줄줄 말하게 하는 교육이 시행되고 있다.

바다의 신(神)인 포세이돈의 아들 프로쿠루테스는 행인들을 유인하여 자기의 침대에 눕히고 그 침대보다 길면 잘라 죽이고, 짧으면 늘여 죽였다. 요즘 아들딸을 학교에 보내는 어머니들과 그 아들딸을 맡아 가르치는 학교 선생님들은 자기 나름의 프로쿠루테스의 침대 하나씩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다리가 짧은 오리 같은 영혼에는 긴 작대기를 붙여 묶어주고, 황새의 긴 다리 같은 영혼은 짧게 잘라 준다.

‘심청전’의 주제는 무엇이냐고 물으면 ‘효’라고 대답해야 한다. 그런데 사실은, 심청전의 주제는 겉으로 드러난 것이 ‘효’인 듯싶지만 속에 감추어져 있는 주제는 불교적인 ‘깨달음’이다. 양반 퇴물인 심봉사는 딸을 공양미 삼백 석에 팔아먹은 얌체 남자인데, 딸이 죽은 다음 참담한 참회의 삶을 산 다음, 인당수에서 환생하여 연꽃 속에 실리어 와서 황후가 된 딸을 보는 순간 눈을 떴다. 그것은 탐욕으로 인한 미망(迷妄)의 눈을 떴다는 것이니까 불교적인 ‘깨달음’이 그 주제인 것이다.

그런데 그 주제를 ‘효’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한 학생이 그 주제는 ‘깨달음’이라고 대답한다면 그것은 넘치는 것이고, 그 넘침은 그들의 침대로 말미암아 죽음으로 이어진다.
시(詩) 한 편을 감상하는 자리에서도, 시의 세계에 대한 학생의 자유로운(넘치는) 상상력은 금물이다. 요점 정리해놓은 참고서나 담당 교사가 짚어주는 대로만 밑줄을 긋고 달달 외워야 한다. 시어(詩語)가 상징하는 것은 무엇이고, 수미쌍관(首尾雙關)이 무엇이고, 주제가 무엇이고…. 거기에서 한 치라도 벗어나면 잘려 죽는다. 교사와 수능 시험 출제자가 사용하는 프로쿠루테스의 침대 길이를 기준 삼아 교육하고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교육과학기술부는 프로쿠루테스의 침대 기본 규격을 각 교육청으로 내려 보내고, 교육청에서는 그 규격에 따라 침대를 여러 개 만들어 각급 학교로 보내고, 각급 학교의 교장들은 또 비슷한 침대를 제작하여 교장실에 비치하고, 선생들에게 그것과 비슷한 침대를 만들어 운용하게 한다. 그 침대보다 크거나 작은 학생들의 영혼은 다 자르거나 늘여 죽이고, 그 침대의 길이와 똑같은 규격품의 영혼들만 이 세상에 존재하게 한다.
교육에서만 그러하랴. 나는 세상이 한심스러울 때마다 바다로 눈을 돌린다. 맹인인 심봉사로 하여금 눈을 뜨게 하는 과정에, 심청이 빠져 죽은 바다와 그녀가 환생하여 실려 온 바다, 연꽃이 있다.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바다와 연꽃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나는, 지도에서 보면 ‘ㄷ’자 모양새인 득량만 바다를 토굴 앞에 가로 눕혀놓고 산다. 토굴은 언덕 위에 있으므로 늘 바다를 내려다보고 산다.

바다는 반드시 푸르지만은 않다. 묽은 회색일 때도 있고, 진한 회청색이나 흰색에 검푸른 물감을 약간 희석시켜 놓은 듯싶을 때도 있고, 금빛 공단을 깔아놓은 듯싶을 때도 있고, 맑은 청남색인 경우도 있다. 별밤에는 거무스레하게 보이고, 달밤이면 샛노란 달빛을 보듬고 출렁거린다.

바다는 바람, 구름이나 해와 달과 별로 인해 하루에 몇십 차례씩 얼굴 표정을 바꾼다. 사람들은 바다의 바뀌는 표정을 보면서도 바다는 푸르다는 관념을 가지고 있다.

여름 바다는 삼십대 중반의 여자 같이 느껴진다. 아기를 생산하는 어머니이기도 하고 남자를 유혹하는 여자이기도 한 바다는 우주를 있게 한 뿌리이다. 노자는 그것을 ‘곡신(谷神)’이라고 말했다. ‘곡신은 그윽한 암컷(玄牝)이고 그것의 문은 우주의 뿌리이다.’
화산으로 인해 생긴 울릉도의 가장 높은 산 위에는 울릉도를 낳은 누리분지가 있다. 그 분지는 거대한 분화구이다. 거기에 물이 담겼다면 한라산의 분화구인 백록담이나 백두산의 분화구인 천지처럼 되었을 것이다.

그 분화구가 죽어버린 뿌리라면 바다는 영원히 살아 있는 우주의 뿌리이다. 아기를 잉태한 여성의 아기집이 여성의 몸에서, 아기를 키우고 보호하게 하는 호르몬을 분비하게 촉구하듯이 바다도 우주를 위하여 그렇게 하는 것이다.

바다는 육지가 더럽혀놓은 물을 정화시키고 그 속에서 생명체들이 살게 한다. 바다는 구름을 만들고, 구름은 육지에 비를 뿌려 거기에 사는 모든 것을 생성하게 하고 병든 것을 치유하게 한다. 바다는 자유와 화해(和解)와 화엄(華嚴)을 가르쳐준다. 우리 후세들을 키우고 가르치는 모든 사람은 바다에 와서 편협해진 오염된 마음을 씻고, 너그러운 모성성(母性性)과 자유와 화해와 화엄을 배우고, 거기에서 터득한 것을 세상으로 돌아가 실천해야 한다.

'창(窓) > 이런일 저런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LH 118조 빚은 '안 망해서' 생긴 것  (0) 2010.08.19
일본 열도 10만㎞  (0) 2010.08.18
日보다 심한 中 역사 왜곡  (0) 2010.08.16
1억명의 시오노 나나미  (0) 2010.08.14
압류 현장에서 만난 아픔들  (0) 2010.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