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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열도 10만㎞

namsarang 2010. 8. 18. 22:07

[특파원 칼럼]

일본 열도 10만㎞

 

             ▲ 선우정 도쿄특파원

작은 기록을 하나 세웠다. 5년 전 일본에서 산 자동차 주행 거리가 지난주 10만㎞를 넘었다. 홋카이도 북단에서 가고시마 남단까지. 찻길이 없어 항공편을 이용한 오키나와를 포함해 일본 47개 광역자치구를 빠짐없이 돌아봤다. 틈나는 대로 돌다 보니 제법 두꺼운 여행 일기가 생겼다.

전국 여행을 결심한 것은 일본 부임 8개월 뒤인 2006년 2월 시마네(島根)란 곳에서였다. 시마네현이 제정한 '다케시마(독도)의 날' 1주년 행사를 취재하기 위해 방문했을 때다. 일본의 시골이었다. "시골 사람들이 무슨 영토 불평이야…." 이런 기분이 앞섰다. 작은 시골의 퍼포먼스를 취재하러 온 기자 자신도 솔직히 한심했다. 하지만 기사만큼은 세게 보낸 듯하다. 한국의 독도 영유권이 당장 위기에 빠진 것처럼….

타지에 가면 밤이든, 새벽이든 운동 삼아 동네를 뛴다. 시마네현 마쓰에(松江)시에선 새벽에 뛰었다. 한참을 뛰다가 방향을 잃었다. 개천가 서민 동네에 잘못 들어갔다. 하지만 달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보도 블록 한 장 엇나가고 울퉁불퉁한 것이 없었다. 쓰레기 하나 굴러다니지 않았다. 허름한 목조주택은 쓰러질 듯했지만, 깔끔히 정리돼 있었다. 여든이 넘어 보이는 할머니는 화단에 물을 주고, 이웃 할아버지는 골목을 쓸었다.

일본 시골의 서민 동네가 그렇게 깔끔했다. 동네를 빙빙 돌았다. "일본에서 무엇을 보고, 한국에 무엇을 전해야 할까?" '다케시마의 날'을 기념하는 소수의 시마네보다 밑바닥까지 성실한 다수의 시마네가 더 절실히 다가왔다. 하지만 그런 모습은 전하지 못했다. 정돈된 골목, 부지런한 노인이 '다케시마'로 흥분한 한국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모두 괘씸한 일본일 뿐이다.

시마네 골목에서 "일본을 몰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여행을 시작했다. 어디를 가나 '멋진 일본'과 '나쁜 일본'이 교차했다. 교토 히가시야마(東山)의 멋진 문화유산 뒤에는 한국인의 귀무덤이 있었고, 나가사키의 장대한 산업유산 뒤에는 한국 징용자의 유골이 묻혀 있었다. 일본이 자랑하는 아리타(有田) 도자기 마을의 사찰은 끌려온 한국인 도공의 한(恨)을 달랬다. 일본은 땅 전체가 '시마네' 같았다. 감동과 분노가 오락가락하는….

하지만 줄곧 "일본은 큰 나라"란 생각을 했다. 타국에 기대지 않아도 홀로 생존할 수 있는 땅이었다. 지역 반목도 없었다. 국민은 성실했다. 메이지(明治)유신처럼 국가 시스템을 바꾸면 언제든 대국이 될 수 있는 체력을 가지고 있다. 이런 일본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100년 전 상처 받은 국가의 영혼을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

일본 열도를 달리면서 과거보다 미래를 바라보고, 단점보다 장점을 챙기는 것이 우리를 위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과거에 대한 분노를 거두면 수많은 장점이 부각되는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의 장점을 배울수록 우리가 강해졌다면 그걸로 된 것이다. 섬나라 일본은 비뚤어진 역사관을 가져도 존립할 수 있지만, 문명과 세력이 교차하는 반도(半島) 한국은 과거에 집착하고 이웃과 반목할수록 국가의 기반이 허물어진다. 100년 전에도 그랬고, 100년 후에도 그럴 것이다.

특파원 생활을 연말에 끝낸다. 한국에 돌아가면 한국에서 10만㎞ 여행을 다시 시작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