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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만화 속 조선은 언제나 '닭'이었다

namsarang 2010. 8. 19. 23:17

[태평로]

일본 만화 속 조선은 언제나 '닭'이었다

 

박정훈 사회정책부장

요리사가 닭을 쥐고 목을 칠까 말까 고민하고 있다. 한 손엔 식칼이 들려 있다. 도마 위의 닭은 꼼짝달싹 못한 채 비극적인 운명을 기다리고 있다….

1910년 6월 5일 일본 니로쿠신보(二六新報)에 이런 만평(漫評)이 실렸다. 카이저수염의 요리사는 데라우치 마사타케 조선총독이고, 닭은 조선을 상징한다. 강권통치로 악명 높은 데라우치가 언제 조선 강제병합을 강행할지 때를 계산하고 있음을 풍자한 것이다. 그 두 달여 뒤, 일본은 결국 닭의 목을 치고 만다.

100년 전 조선은 일본의 만화 저널리즘이 즐겨 다룬 소재였다. 당시 일본의 시사만화에 조선이 어떻게 묘사돼 있는지는 '일본, 만화로 제국을 그리다'(일조각)라는 흥미진진한 책에 잘 분석돼 있다. 부녀(父女) 사이인 한상일(국민대)·한정선(고려대) 교수가 펴낸 이 책 속의 일본 만평을 보면 치욕과 모멸감에 피가 솟구치는 것 같다.

을사늑약 직후인 1905년 12월 15일 시사잡지 '도쿄퍽'엔 새 조롱 속의 닭이 주인이 주는 모이를 받아먹는 만평이 올랐다. 닭은 조선, 주인은 일본을 상징한다. 조롱 옆에는 '조선산 보호새(朝鮮産保護鳥)'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을사늑약으로 조선을 일본 통치 속에 가두는 데 성공했음을 묘사한 것이다.

이듬해인 1906년 6월 6일 한 신문엔 식탁 위의 닭을 놓고 제복 차림의 두 사람이 칼을 쥔 채 서로 쏘아보는 만평이 실렸다. 한 사람은 이토 히로부미고, 다른 사람은 총리대신 가쓰라 다로다. 조선병탄이란 요리를 위해 칼질을 강경하게 할 것인지, 유연하게 할 것인지의 강온파 논쟁을 풍자한 것이었다. 만평은 제목부터 '조선요리 경쟁'이라고 노골적인 표현을 달았다.

100년 전 일본의 풍자만화에서 조선은 유독 닭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았다. 탐욕에 불타는 일본 제국주의는, 조선을 치킨 요릿감으로 본다는 속내를 굳이 감추려 하지도 않았다.

강제병탄의 해인 1910년 '도쿄퍽' 신년호 만평에선 조선이라는 닭장 속에서 '친일 닭'과 '배일(排日) 닭'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만평은 두 닭이 "여름 파리떼처럼 싸운다"고 비하한 뒤 "자신이 누란(累卵)의 위기에 처해 있는 것도 모르고 싸우는 닭들은 참으로 불쌍하다"는 설명을 붙였다. 나라 잃을 위기 앞에서도 분열돼 싸우는 조선을 한껏 조롱한 것이다.

이윽고 강제병탄 당일인 1910년 8월 29일 한 잡지는 '경축'의 의미에서 이토 히로부미가 저승에서 정한론(征韓論)의 대표 인물인 사이고 다카모리를 만나 조선이라는 닭을 갖다 바치는 장면을 담았다. 100년 전 세계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가혹한 야만(野蠻)의 정글이었다.

하지만 조선 민중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제대로 알지조차 못했다. 강제병합이 임박했음을 전한 1910년 8월 22일자 뉴욕타임스는 "조선인들은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전혀 모르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중에서도 우리의 가슴을 비수로 후벼 파는 것은 이토 히로부미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저승 대면'을 그린 만화다('도쿄퍽' 1910년 11월 1일). 이토가 안중근의 총탄을 맞고 저승에 가자 300여년 전 조선을 침략했던 도요토미가 반갑게 맞아주며 섬뜩한 대화를 나눈다.

"공(公)의 가슴에 난 상처는 무엇보다 귀한 훈장이올시다."(도요토미) "300년 전 귀하가 처음으로 편 뜻을 오늘에야 이루었습니다."(이토)

남의 나라를 먹잇감으로 삼았던 살벌한 세상, 우리는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남아 여기까지 달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