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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북한의 속사정

namsarang 2010. 8. 20. 23:05

[전문기자 칼럼]

요즘 북한의 속사정

          ▲ 강철환 동북아연구소
                       연구위원

요즘 북한 내부의 엘리트 간부들 속에서는 "지금 조선(북한)은 역사적 전환기에 놓여 있다"는 말이 돌고 있다. 체제 변화가 눈앞에 와 있다는 얘기다. 이 변화를 앞두고 김정일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는 길이 오직 혈통주의에 입각한 세습에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당 간부 모두가 같은 생각인지는 매우 의문이다.

최근 후계자의 버팀목이었던 이제강 당(黨) 조직부 제1부부장이 의문의 교통사고로 사라지고 박재경 인민군 총정치국 선전담당 부국장이 인민무력부 대외담당 부서로 이동한 것은 주목할 만한 사건이다. 그 내막을 알 수는 없지만 무언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것이 3대 세습을 둘러싸고 체제와 정권의 위기를 피부로 느끼는 간부 집단과 김정일 측근들 간의 틈새를 보여주는 징후일 수도 있다.

지금 북한의 실세는 오극렬과 장성택이다. 두 사람 모두 김정일의 최측근이지만 파워가 오극렬 쪽으로 확 기울고 있다. 오극렬은 이미 오랫동안 김정일의 절대적 신임 속에 당 작전부를 지휘하면서 군부 내에 확고한 인맥과 파워를 구축했다. 이제는 김정일조차도 마음대로 제거할 수 없는 단계에 들어서고 있다. 하지만 장성택은 군부에 있던 두 형이 '심장마비'로 사망했고 주위의 끝없는 견제로 측근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상태다. 권력의 균형이 무너지고 있다.

여태까지 북한에서 정치적 혼란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아무리 어려워도 김정일 주변의 측근들은 뭉쳐 있었고 한배를 타야 할 운명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들 사이에도 "이러다 루마니아 꼴 나는 것 아니냐" "중국식으로 가야 사는 것 아니냐"는 고민이 어쩔 수 없이 퍼지고 있다. 김정일의 생물학적 수명이 오래 남지 않은 지금, 그들 앞에는 그야말로 '선택의 문제'가 닥쳐오고 있다.

지금 북한의 식량 문제는 1990년 후반에 벌어졌던 대아사(大餓死) 사태와는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화폐개혁으로 수개월간 무너졌던 시장이 다시 살아나면서 인민들은 이판사판 필사적으로 시장에 몰려들고 있다. 당국의 시장 통제는 더 이상 불가능해지고 있다. 해외원조가 끊기면서 군대와 권력집단도 점점 막다른 골목으로 밀려가고 있다.

지금 노동당의 대다수 간부 중에 김정은이 도대체 어떻게 생겼는지, 지난날 무엇을 했는지 아는 사람이 없다. 노동당 선전선동부는 김정일 세습 때처럼 무엇인가를 만들어내야 하지만 그런 작업은 거의 없는 상태다. 과거 김정일은 노동당 안에 '10호'라는 비밀 부서를 만들어 자신의 가계(家系)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언급하는 사람들을 잡아 처리하는 권한을 주었다. 따라서 김정은 세습 때에도 김씨 가계는 성역(聖域)일 것이다. 그런데 지금 김정은을 내세우려면 그의 모친 고영희가 나와야 하고 이는 결국 김정일의 사(私)생활과 그의 가계 문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자신의 사생활과 가계가 드러나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김정일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두고 봐야 한다.

세습의 모순은 이뿐이 아니다. 세습에 가장 큰 걸림돌은 역설적으로 김정일 자신이다. 김정일은 김일성을 꼭두각시로 만들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권력을 아들에게 넘겨 스스로 비참해지는 것을 두려워할 것이다. 넘겨줘야 하는데 그러기는 싫은 모순이 후계 구도를 불투명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