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조인원 기자 joinl@chosun.com
'박정희 독일연설 기념비' 건립하는 신용석씨
"근대화 위해 몸부림치던 한국 현대史의 한 페이지"
독일어 연설문도 넣기로
"만리타향에서 상봉하니 감개무량합니다.(…) 비록 우리 생전에는 이룩하지 못하더라도 후손을 위해 번영의 터전만이라도…."대통령의 연설은 여기서 끊겼고, 강당은 울음바다가 됐다. 46년 전인 1964년 12월 10일, 독일 북서부 뒤스부르크시(市) 함보른광산회사를 찾은 박정희 전 대통령은 파독(派獨) 광부·간호사 600명에게 격려사를 하던 중 감정이 복받쳐 연설을 마치지 못했다. 근대화·산업화를 위해 몸부림치던 한국 현대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이 현장에 '박정희 전 대통령 연설기념비가'가 오는 12월 10일 세워진다. 현재는 뒤스부르크시의 한 시민체육강당으로 쓰이는 곳이다.
"그 강당은 우리 현대사에서 반드시 기억돼야 할 곳 중 하나입니다. 그렇지만 그 장소를 제대로 기억하는 이가 없었지요. 저도 찾으리라는 기대 없이 무작정 찾아갔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동네 노인들이 당시를 또렷이 기억하며 위치를 알려주더군요."
기념비 설치를 추진하는 신용석(69) 아시아올림픽평의회 부회장이 강당을 찾은 것은 지난 4월이었다. IOC 관련 회의 참석 차 들른 독일이었지만, 더는 역사적인 장소를 방치할 수 없다는 생각에 김계수 박사('광부기념회관' 명예 관장)와 의기투합해 연설기념비를 세우기로 했다. 한국에 돌아와 '기파랑' 출판사 안병훈 대표와 조갑제 '조갑제 닷컴' 대표 등과 '박정희 대통령 뒤스부르크-함보른 연설기념비 건립위원회'(02-734-1245)도 만들었다. 뒤스부르크 시장과 만나 기념비 문제를 논의했고, 원래 계획에 없던 박 전 대통령의 연설문도 한국어·독일어로 기념비에 넣기로 했다.
"1970년대 신문사 특파원으로 일하며 파독(派獨) 광부들의 삶을 취재했어요. 광부들은 30도가 훨씬 넘는 지하 1500m 막장에 투입됐습니다. 쉬는 날에도 인근 식당에서 감자를 깎거나 모래채취장에서 일해가며 한 푼이라도 더 송금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대통령이 찾아와 눈물의 격려사를 했으니…. 후손들이 마땅히 기억해야 할 장소 아니겠습니까."
- ▲ 1964년 박정희 대통령이 파독 광부·간호사들에게 격려사를 했던 독일 뒤스부르크시의 한 시민체육강당(옛 함보른광산회사). 지난 4월 신 부회장이 찾았을 때 보수 공사중이었다. /신용석씨 제공
"정문에 한글로 '광부기념회관'이라 적힌 건물에서 재독(在獨) 한인들이 나와 절 맞았지요. 1960~70년대 서독에 파견된 광부였던 분들이 60~70대 노인이 돼 있더군요. '그 시절 세계 여러 나라에서 독일로 광부를 보냈지만, 이후 경제 대국으로 우뚝 서서 독일에 기념관까지 만든 민족은 한국뿐'이라고 자랑스러워했습니다. 불과 몇 십년 전만 해도 외화벌이를 위해 광부를 파견했던 나라가 이렇게 성장했으니, 나도 그분들도 감동에 말을 잇지 못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