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황창규]
일하지 말고 놀아라
일을 즐기도록 하는 리더십 세계에서 가장 바쁜 최고경영자(CEO) 중 한 사람인 에릭 슈미트는 생각보다 여유가 넘쳤다. 그에게는 스티브 잡스와는 또 다른 리더십이 있다. 한국은 세계 IT산업의 테스트베드 역할을 하고 있는 만큼 검색엔진, 메모리처럼 한국이 우수한 기술 분야에서 협력을 기대한다는 말에 신뢰가 묻어났다. 그의 리더십의 요체는 직원들이 일을 즐기도록 하는 지혜다. 문득 ‘호지자(好之者) 불여락지자(不如樂之者)’라는 공자 말씀이 떠올랐다. ‘즐겁지 않으면 일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우리 정서와는 잘 안 어울리지만 구글이 짧은 기간에 세계적 브랜드가 된 비결이다. 구글 등 많은 글로벌 기업은 본업을 넘어 신규사업 확장에 혈안이 돼 있다. 신규사업 진출 방식은 대체로 세 가지다. 첫째, 가장 흔한 것으로 외부회사 인수다. 태양전지와 충전용 리튬 이온전지 등 친(親)환경 에너지시장 공략을 위한 파나소닉의 산요 인수나 구글이 소프트웨어업체 안드로이드와 온라인 비디오업체 유튜브를 인수한 것이 좋은 사례다. 둘째, 회사 오너나 CEO의 선택에 의존하는 형태인데 삼성의 반도체, 애플의 아이폰 등이 이 범주에 속한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진 직원들이 출구를 뚫는 형태다. 아마도 이게 앞으로 트렌드를 이끌어가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이것은 직원들의 ‘자발적 광기’를 끌어내야 하는데 실패 확률이 높아 우선 겁부터 난다. 우리 같으면 ‘생산성 100% 향상’ 같은 산업시대 슬로건이 붙어 있을 자리에 구글에는 ‘No working(일하지 말라)’이라는 문구가 있다. 업무시간의 20% 이상은 자유롭게 놀면서 개인 관심사를 끈질기게 천착하도록 한다. 필자가 기업에 있을 때 시행했던 ‘메디치 연구회’를 연상시킨다. 20, 30대 창의적 연구원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아무 제약 없이 미래 성장동력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는 모임이었다. 연구 주제는 취미가 될 수도, 또 엉뚱한 것일 수도 있다. 세상에서 누가 가장 행복한가. 돈 많은 사람, 부와 명예를 다 누리는 사람, 친구가 많아 늘 즐거운 사람 등등…. 하지만 필자는 취미와 직업이 일치하는 사람을 으뜸으로 친다. 자기가 즐거워서 하는 게 취미다. 하고 싶고, 또 하면 할수록 즐거운데 부와 명예까지 따라 온다면 이보다 신나는 게 또 있을까. 미래 대응형 노블레스 오블리주 한국에는 잡스나 슈미트가 정녕 없을까? 있다. 있는데 못 찾는 것이고, 나올 만 하면 싹을 자르니 안 보인다. 업적주의가 지배하는 우리의 경우 대부분의 미션은 위로부터 주어지는데 이를 달성 못하면 위축된다. 성과가 물론 가장 중요하지만 결과만을 중시하는 분위기에서 창의성은 열매 맺기 힘들다. 모난 돌이 정 맞듯 엉뚱함에서 비롯된 창의적인 생각들은 핀잔의 대상이 안 되면 다행이다. 보통 강심장이 아니고는 주눅 들게 마련이고 두 번 다시 생뚱맞은 아이디어를 낼 엄두가 안 난다.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선전하고 있는 미국도 고민은 있다. 2009년 하버드비즈니스리뷰는 미국 경쟁력 하락의 가장 큰 원인으로 하드웨어 부문의 조기 철수를 꼽았다. 아웃소싱에 너무 의존하다 보니 인텔 등 몇몇 업체 말고는 경쟁력 있는 하드웨어 업체들이 사라졌다는 진단이다. ‘하드웨어 공동화’ 현상이 국가 전체의 경쟁력을 떨어뜨렸다는 얘긴데 하드웨어에 비교우위가 있는 우리에겐 희망적인 제언이다. 예전보다는 좀 살 만해졌지만 국민소득 1만 달러 시대를 여전히 헤매고 있는 이 고비를 넘기려면 꼭 필요한 게 있다. 10년, 20년 뒤 우리가 무엇을 가지고 선진국으로 도약할지 고민하는 리더가 더 많아져야 한다. 당장의 성과를 조금 희생하더라도 자기가 떠난 이후의 미래를 임기 중에 준비하는 리더들의 모습. 이것이야말로 멋들어진 미래 대응적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의무) 아닌가. 단기 성과에만 집착해 젊은이들이 ‘리스크 테이킹’을 아예 포기하도록 하는 기성세대는 지금 심각한 직무 유기 중이다. 황창규 객원논설위원·지식경제부 R&D전략기획단장 cghwang@mke.g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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