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광일 부국장 겸 국제부장
그래도 궁금하다. 왜 갔을까? 누구랑 갔을까? 어디로 갔을까? 누굴 만났을까? 오늘은 어디서 잘까? 언제 돌아올까?…. 이건 가족끼리도 흔히 던지는 질문 아닌가. 하나 더. 집에 손님(카터)도 있었잖아?
북·중 정상회담 얘기가 나돌던 27일 밤에도 우리의 궁금증은 복잡하지 않았다. 무슨 얘기를 했을까? 얼마나 했을까? 약속한 건 있을까? 김의 방중 소식이 전해진 목요일 아침부터 정말 궁금했다. 서울·워싱턴·베이징에서 정보 라인을 취재하는 기자들, 그리고 지린과 창춘에서 김의 동선을 마크하는 기자들도 여기에 매달렸다. 그런데도 이 단순한 질문에 우리가 작성한 기사는 '…라고 알려졌다' '…라고 전해졌다' '…일 가능성이 크다'가 태반이었다.
평양은 그렇다 치고 베이징 당국도 아무런 설명이 없다. 묵묵부답이다. 서울에서 나오는 정보 역시 한계가 있기는 마찬가지였고, 실명을 달고 확인해주는 당국자는 없다.
북한 르포를 전하는 외국 언론들은 한때 '지구상의 마지막 남은 스탈린 국가' '유령들이 사는 나라' 같은 표현을 자주 사용했었다. 김정일의 방중 기사를 처리할 때는 정말 유령을 쫓는 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인류 역사상 비슷한 경우를 찾지 못할 정도로 돌발적 행태를 보이고 있는 북한의 '김씨 왕조'이니 당연하지 않으냐고 외면해버릴 수 있는 일인가.
이럴 때는 작은 조각이라도 팩트에서 출발해야 한다. 일, 김정일이 중국의 지린·창춘에 왔다. 이, 카터는 곰즈를 데리고 27일 평양을 떠났다. 삼, 이날 밤 북·중 정상회담이 열린 것으로 보이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모르며, 내일 김정일이 어디로 갈지 우리는 모른다. 그 외는 전부 간접적인 정황 설명이다.
이게 '마지막 스탈린 국가'다운 행태라고 무시해버릴 수도 없다. 김정일 뒤에 후진타오가 있고, 북한 뒤에 중국이 있기 때문이다. 수해복구 지원, 인프라 투자지원, 건강문제, 후계체제 공고화, 미국 주도의 대북제재 등 북한엔 절박한 어젠다가 한둘이 아닐뿐더러, 또 이것은 중국의 지대한 관심사항이고, 무엇보다 한반도 주변 국가들의 앞날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장기자들은 무장경찰이 봉쇄한 지린과 창춘의 호텔 앞에서 밤샘하며 흡사 유령을 쫓듯 취재한다.
김정일 방문 때문에 하루를 쉬었다는 지린시 위원(毓文)중학교의 아이들이 인터넷에 '김정일 장군님, 우리에게 휴가를 주신 당신을 사랑합니다' '작은 뚱뚱이(김정은을 지칭한 듯)가 며칠 있다가 갔으면 좋겠다…'고 해서 화제였다. 아이들 눈만 정직하기 때문일까. 27일 네티즌들은 '돈 빌리러 왔겠지 뭐' 같은 글들을 올리고 있다.
다시 팩트만 말하자. 김정은은 아버지를 따라갔을까? 지난 5월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온갖 분석 기사를 쏟아냈었다. 이번에도 사정은 비슷하다. 이번 방중에서 '세자 책봉'을 통지했을 것이라지만 평양·베이징·워싱턴·서울도 부자 동행에 대해 공식확인은 없다. 지린과 창춘에서 3남을 봤다는 현장 목격자도 아직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