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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이 아니라 그 뒤의 후진타오를 봐야

namsarang 2010. 8. 27. 23:36

[시론]

김정일이 아니라 그 뒤의 후진타오를 봐야

  • 박승준 인천대 초빙교수
      ▲ 박승준 인천대 초빙교수
불과 3개월 만에 다시 이뤄진 김정일 방중(訪中)은 정말 이상하다. 미국의 카터 전 대통령이 평양에 와 있는데 만나지도 않고 중국으로 가버렸다. 그가 이번에는 베이징으로 가지 않고 다시 평양으로 돌아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경우든 이번 방중 역시 북한과 중국 관계가 최근 들어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로 추가될 것이다.

1949년 중국공산당 정부 수립 이후 중국은 친(親)북한 일변도의 자세를 취했다. 이것이 북·중 관계의 첫 번째 흐름이다. 이 흐름 속에서 6·25 전쟁 기간 중 중국군의 개입이 있었고, 중국과 한국 사이에는 일절 국가 간 교류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 흐름은 이데올로기로 중국을 통치하던 마오쩌둥(毛澤東)이 주도했다.

그러다 1976년 마오쩌둥이 죽은 이후 권력을 잡은 덩샤오핑(鄧小平)은 새로운 흐름을 주도했다. 덩샤오핑은 한국에 대한 접근책을 썼다. 당시 한국은 NIES(신흥공업국)의 모범 사례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고, 덩샤오핑은 중국의 경제발전을 위해 한국을 활용하려 했다. 1992년 한국과의 수교도 성사시켰다. 최근까지 계속된 이 두 번째 흐름 속에서 중국은 북한과 냉정한 관계를 유지했다.

지금 북·중 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은 이 두 번째 흐름이 다른 세 번째 흐름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의 흐름은 아이로니컬하게도 덩샤오핑이 후계자로 지목한 현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주도하고 있다. 중국 쪽에서 들리는 이야기는 후진타오가 지난 2009년 5월 중국공산당 외사(外事) 영도 소조회의를 통해 대(對)북한 정책의 기조를 "핵문제 해결과 친선관계의 분리"로 잡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북한 핵문제 해결은 그대로 진행하고, 대북 친선관계는 핵문제 해결과는 별도로 변함없는 기조로 유지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지난 30년간 빠르게 발전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배경으로 북한을 어떤 경우에도 끌어안고 가겠다는 전략을 세웠다는 것이다.

중국의 그런 전략은 경제적으로는 우파의 견해를 갖고 있지만 정치적으로 좌파에 속하는 후진타오 등 중국의 제4세대 지도자들이 갖게 된 생각을 바탕으로 수립된 것으로 판단된다. 천안함 사태 발생 이후의 중국 태도나, 이명박 대통령과 후진타오 국가주석의 상하이 방문에 바로 뒤이어 벌어진 지난 5월의 김정일의 방중도 바로 그런 중국 지도부의 대북 정책 변화의 결과물로 봐야 한다. 김정일이 이번에 후진타오와 만나지 않고 북한으로 돌아가더라도 두 나라 관계는 이런 이상한 일까지도 스스럼없이 할 수 있는 관계가 되었다는 뜻이다.

근본 문제는 미국발 금융위기 발생 이후 G2로 불리게 된 중국의 정치 지도자들이 갖게 된 자신감이다. 그런 자신감이 중국과 북한 관계의 기본을 어떻게 바꾸어놓고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바꾸어 놓을 것인가를 잘 관찰해야 한다. 중국이 한국이라는 신흥공업국을 필요로 해서 북한과 냉정한 관계를 유지하던 시기는 이미 지나갔으며, 이런 흐름을 김정일이 어떻게 보고 있는지, 김정일이 중국과의 지정학적 거리의 근접성을 어떻게 활용해 나가는지를 잘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김정일이 깜짝 방중해서 김정은 세습을 정당화하느냐의 여부는 중국에는 큰 관심사도 아니고, 반대할 일도 아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김정일을 볼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있는 후진타오를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