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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恥 100년, 다시 동아시아 격변의 복판에 서서

namsarang 2010. 8. 28. 22:52

[사설]

國恥 100년, 다시 동아시아 격변의 복판에 서서

내일로 우리는 대한제국이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로 떨어진 지 100년을 맞는다. 1910년 8월 29일로부터 36년간은 한국인들이 발 딛고 살 나라가 사라져버린 세월이었다. 2000만 백성은 이민족 통치에 생명과 재산 그리고 영토를 내맡긴 채 숨도 크게 못 쉬는 신산(辛酸)의 삶을 살아야 했다. 겨레의 말과 역사, 내가 누구인지 밝히는 정체성(正體性)의 뿌리인 성(姓)과 이름마저 빼앗겼다. 역사상 우리 민족이 이처럼 철저하게 존재 자체를 부정당했던 적은 없었다.

일본은 무장한 군대와 헌병과 경찰이 둘러싼 폭압 분위기 속에서 일본과 내통(內通)한 대한제국 내각 총리대신 이완용에게 조선통감이 작성한 전권위임장을 주고, '대한제국 황제가 일왕에게 통치권을 넘겨줘 일왕이 이를 받아들인다'는 내용으로 조선통감이 만들어놓은 조약문서에 서명하도록 했다. 한국과 일본의 지식인들은 지난 5월 '한국 병합 100년에 즈음한 성명'에서 "한·일 합병조약은 전문도 거짓이고 본문도 거짓이며 조약 체결의 절차와 형식에도 중대한 결점과 결함이 보이는 불의 부당한 것이었다"며 "조약은 체결 당시부터 무효"라고 선언했다.

광복 후의 새로운 한·일관계는 일본이 국권 침탈 과정에서 저지른 이 같은 불법성을 엄정하게 지적하고 그들로 하여금 이 역사적 죄과(罪過)를 솔직히 인정하고 선언하도록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했어야 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 절대 빈곤으로부터 탈출할 경제 발전의 종자돈 마련에 다급하게 쫓겼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1965년 이렇게 체결된 한·일 기본조약을 방패 삼아 한국 강제병합이 도덕적으로야 어찌 됐든 법률적으로는 합법적이었고, 한국 식민 지배도 법적으로 유효했다는 입장을 지금껏 한 번도 거둔 적이 없다. 식민 지배에 따른 한국민의 개별적 피해 보상 역시 이 조약으로 모두 청산됐다는 주장을 되풀이해 왔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과 역사 교과서 왜곡 같은 문제의 뿌리도 결국 여기에 닿아 있다.

100년 전 나라가 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유학자 매천 황현(黃玹)은 "국가는 필시 스스로 자기를 해친 연후에 남이 치고 들어온다고 했으니, 아 슬프다"고 했다. 매천의 말 그대로였다.

서양 제국주의의 서세동점(西勢東漸) 소리가 누구 귀에도 훤히 들리던 19세기 후반 조선의 지배층은 세계의 기운(氣運)이 바뀌는 것에도, 제국(帝國)의 책략이 무엇인지에도 깜깜했다. 일본에선 개화(開化)냐 양이(攘夷)냐를 놓고 온 나라가 목숨을 건 노선 투쟁을 벌이고, 늙고 굼뜬 청(淸) 또한 국제법과 국제정치를 익히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그때 조선은 개화를 통해 세계의 정세를 판단하고 새 문명의 문법(文法)을 도입해 경제와 군비(軍備)를 정비해 나라의 뼈대를 바꾸려는 움직임이 너무나 더디고 미약했다. 훗날 이이제이(以夷制夷)의 전략으로 나라의 쇠망을 막아보려던 시도가 서양 제국의 이면(裏面) 흥정에 의해 번번이 농락당하고 만 것도 국제 정세에 대한 이런 무지(無知) 때문이었다.

21세기의 두 번째 10년을 시작하는 지금 동북아 무대 위에선 반(半)식민지 50년, 공산 폐쇄사회 30년을 보낸 중국이 개혁·개방 30년의 성과를 딛고 세계의 공장으로 세계 제2 경제 대국을 향한 도약을 눈앞에 두고 미국과 세계 질서를 논하는 '글로벌 2'(Global 2)의 위치에 올라섰다. 지난 40년 동안 세계 제2의 경제 대국 자리를 지켜온 일본도 100년 만에 다시 찾아온 동북아 질서 재편의 기회와 위험 앞에서 국가의 새 진로를 암중모색하고 있다. 일제 36년의 후유증인 남북 분단의 십자가를 걸머진 대한민국 역시 근대화와 민주화를 차례로 달성하고 세계의 선진 대열에 올라섰다. 세계 인구의 3분의 1과 세계 부(富)의 3분의 1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는 동북아지역의 질서 재편 과정에서 대한민국이 얼마나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느냐의 여부는 이제껏 우리의 멍에로 짊어져 왔던 북한이란 변수를 어떻게 민족 재도약의 시너지(synergy)원(源)으로 바꿔나갈 수 있느냐에 달렸다.

100년 전 흥망의 교훈을 돌아보는 오늘이야말로 지도자는 지도자 자리에서, 국민은 국민의 자리에서 민족 재도약의 열쇠를 담고 있는 북한문제를 머리와 가슴만이 아니라 온몸으로 떠안고 풀어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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