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
얼마 전 약속 장소에 지하철을 타고 갈 때 일이다. 문이 열리고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렸다. 학생 대여섯이 전철에 올라타는가 싶더니 주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떠들기 시작했다. 중학생으로 보이는 그들의 대화는 절반이 욕이었다. 곁에서 듣고 있기가 민망하고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였다. 정작 그 학생들은 자신들이 욕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뜻도 모른 채 습관적으로 욕설을 내뱉는 청소년들이 늘어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청소년들 욕설문화와 그릇된 언어행태가 얼마 전 국무회의에서도 논의됐다고 하니 심각한 사회문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있다.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을 가장 잘 드러낸다. 말은 버릇이며 습관이다. 버릇이나 습관은 여러 번 거듭해 저절로 마음이나 몸에 굳어버린 성질이다. 한 번 우리 몸이나 마음에 밴 것은 고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그래서 부모들은 자녀들이 어려서부터 바르고 고운 말을 쓰도록 교육하는 데 소홀해서는 안 된다. 다른 이를 배려하지 않는 욕설과 거친 언어는 상대방에 대한 거친 행동으로 이어진다는 전문가들의 우려도 있다.
욕은 언어 중에서 가장 자극적이다. 욕설은 성적 의미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며칠 전 신문에 학급 아이들에게 '욕 강좌'를 하는 선생님들 기사가 있었다. 아이들에게 욕에 담긴 뜻을 알려주면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욕'이 줄어든다고 한다.
성경에도 욕설에 대한 언급이 많은 것은 욕이 인간 삶과 무관하지 않다는 방증이다. 인간 삶의 희로애락(喜怒哀樂) 중 욕설은 노여운 마음과 밀접하다. 어떤 경우에도 욕설을 듣는 일은 유쾌하지 않다. "화덕에서 불이 일기 전에 김과 연기가 나오듯이 피 흘림이 있기 전에 욕설이 먼저 있다"(집회 22,24).
욕설은 타인을 모욕하고 폄하하는 행동이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말을 아끼고 신중함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또 자제력을 지니고 말 한마디에도 심사숙고한다. "말을 삼가는 이는 지식을 갖춘 사람이고 정신이 냉철한 이는 슬기를 지닌 사람이다"(잠언 17,27).
욕설은 때로 죽음으로 치닫게 할 정도로 사람 감정을 격하게 한다. "그가 이스라엘인들에게 욕을 퍼붓자, 다윗의 형 시므이의 아들 요나탄이 그를 쳐 죽였다"(2사무 21,21). 신약에서는 부모를 공경하지 않고 욕을 하는 사람을 크게 나무란다. 부모에게 욕을 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하는 것과는 또 다른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그리고 '아버지나 어머니를 욕하는 자는 사형을 받아야 한다'고 이르셨다"(마태 15,4).
지혜로운 사람은 말을 할 때에도 하느님 말씀에서 슬기와 지식을 얻는다. "내 아들아, 내 지혜에 주의를 기울이고 내 슬기에 귀를 기울여라. 그러면 네가 현명함을 간직하고 네 입술이 지식을 보존하리라"(잠언 5,1-2). 사랑을 담은 하느님 말씀은 우리에게 용서와 위로, 기쁨과 평화를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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